김지희의 쿨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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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을 봤다. 몇년 전 서점가에서 베스트셀러로 오랫동안 있던 책, 소설가 정이현의 '한국판 칙릿 소설'이며,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책. 이런 류의 책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침 심심하던 차에 빌려서 읽게 됐다. 300페이지가 훨씬 넘는 장편소설이었지만, 정말 후딱후딱 페이지가 넘어가 출퇴근길이나 이동 중 지하철에서만 읽었음에도 단 며칠만에 읽었다.

결말 부분의 긴장감이 덜하고 힘이 약한 느낌이었지만... 뭐랄까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30대 초), 비슷한 상태(싱글녀에 비굴한 회사원)여서 그런지 은근슬쩍(?)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자신의 초라하고 비루한 내면, 남에게 꺼내보이기 부끄러운 내면을 딱 꼬집어 표현한다는 점에서 작가란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걸 느끼기도 했다. 주인공 은수의 몇몇 내레이션은 내 심정을 딱 꼬집은 것이기도 했고, 내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다음은 내가 밑줄 친 부분!!


"25세의 여자를 부러워하는 건 탱탱한 피부 때문이 아니다. 내 질투의 이유는, 그녀의 무모한 용기가 수틀리면 쉽게 손 털고 첨부터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자의 자신감게서 비롯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 100배 공감!!! 우리나라 셈법으로 서른을 막 넘긴 나- 게다가 미혼 여성으로 결혼을 언제할지도 모르는 나 -는 가끔씩 뭔가 새롭게 하고 싶다가도, 나이 때문에 더 넓게 생각하기 힘들게 된다.. 물론, 아직 젊은 나이지만, 뭐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 나이, 스물다섯 전은 외모가 부러운 게 아니라 그냥 그 나이가 부럽다..



"어리다는 것은 얼마든지 꿈을 꿀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꿈의 대부분이 몹시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이라는 점. 비록 제 딴에는 아주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하다고 믿어 의심치 않을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의기양양하게 외칠 것이다. "왜 안돼? 하면 돼. 나는 나니까!" 맞다. 그것이 스물다섯 살에 어울리는 세계관이다. 스물다섯살이므로, 그럴 수 있다. 문제는 내게 있었다. '당연하지. 다 잘 될 거야'라고 마냥 북돋워줄 수가 없는 건, 내 인생의 시계추를 다시 칠년전으로 되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 에휴... 나이 먹을수록 힘들어진다... 예전처럼 낙관만 할 수는 없어도 여전히 나는 '근거 없는 (어리석은?) 자신감'을 손톱만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너는 왜, 이 회사에 다니니?'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대답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아니다. 가장 솔직한 대답은 '달리 뭘 해야 좋을지 몰라서'일 것 같다. 나를 안전하게 옭아매고 있는 울타리 밖으로 한 발자국 벗어나는 순간, 막막한 정글 한복판에 내팽겨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겁이 난다면 영원히 이대로 사는 수밖에 없겠지. 동물원 우리는 아늑한 둥지라고 자위하면서."

-> 정이현 작가, 내 머리 속에 있다온 걸까?


"자, 여기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있다고 상상해보자. 둘은 수십년간 단한번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은 제각각의 가족, 친구, 동료와 함께 전혀 별개의 추억을 쌓으면서 살아왔다.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을 걸어온 그 남자와 그 여자가 어느날 처음 만난다. 호텔 커피숍에서, 정장을 떨쳐입고, 서로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암호명처럼 숙지한 채 말이다. 그들은 매우 정중하고 약간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수인사를 나눌 것이다. 그리고 불과 얼마 뒤, 그들이 영원한 법적, 경제적, 성적, 정서적 공동체가 되기로 합의했다는 소식이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에게 전해진다."

->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땐 섬뜩했다. 하지만 이렇게 만나도 잘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난 선보고 금방 결혼하는 타입은 절대 아니지만, 괜히 시니컬해져서 이런 케이스를 비난하고 싶지 않다.  


"결혼에 대해 안달하는 여자는 꼴불견이라고 생각해왔다. 철저한 독신주의자도 아니었다. 남들이 다 하는 거라면 언젠가는 나도 하게 되지 않을까, 막연히 짐작했다. 그리고 그때까지 그저 오래 버티고 싶었다. 버티기가 가능할 때까지, 남들 눈에 추해 보이지 않을 시점까지 자유로운 상태를 유예하고 싶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막다른 길이 닥쳐올 줄을 모르고서..."

-> 완전 뜨끔...;; 내 머리 속에 들어갔다 왔냐고요??



"스무살엔 서른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 나도 스무살때 서른살의 내 모습은 그다지 상상하지 않았지만(젊은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우리나라에선 20대 중반만 넘어도 자기 스스로 늙었다고 생각하니까...), 그래도 상상해본다면 서른살의 나는 지금의 내 모습보다 훨씬 멋지고 안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왠지 씁쓸...) 십대 때는 대학생만 되면 될줄 알았고, 대학생 때는 취직만 하면 될줄 알았는데...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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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책은 나의힘 l 2009/06/24 19:05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생전에 청와대에 걸릴 자신의 초상화를 그릴 이로 이종구(53) 화백을 직접 선택했다. 이종구 화백은 우리나라 농촌과 농민을 극사실 기법으로 그리는 대표적인 농민화가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농촌 출신이며 퇴임 후 농촌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농민을 주로 그려온 이 화백을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이 화백이 그린 노 전 대통령의 초상화는 역대 대통령 초상화와 함께 청와대에 걸려 있으며, 또 노 전 대통령의 일부 분향소에 영정 사진으로 쓰이고 있다.

이 화백은 “2007년 4월 청와대의 연락을 받고 청와대에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났다”며 “함께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는데 정말 인간적이고 소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초상화를 그릴 사람 9명을 추천받았다고 하더군요. 그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께서 작가 프로필과 작품 이미지를 본 뒤 저를 낙점하셨다고 들었어요.”

 그는 “사실 노 전 대통령을 처음 본 건 1992년 전시 때 노 전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라고 회고했다. 당시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부산에 나섰다가 낙선했던 시절이었다. 이 화백은 “당시 농촌을 그린 그림에 노 전 대통령이 관심을 많이 보였다”고 말했다. 2007년 다시 만났을 때도 노 전 대통령은 15년 전 이 화백의 전시를 기억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께 어떤 모습으로 그렸으면 좋겠냐고 하자 옛날 시골에서 살던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바로 그게 내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이 화백은 “이는 단순히 소박하게 그려달라는 뜻이 아니라 진심을 그려달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로부터 참고로 쓸 노 전 대통령의 사진 4장을 받고 이 화백은 지금의 초상화 사진을 그려냈다. 그는 “원래 사진 속 모습은 회색 넥타이였지만 젊고 개혁적인 느낌을 담고 싶어 넥타이를 빨간색으로 그렸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초상화는 그 대상을 존경해야 그릴 수 있는 것”이라며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노 전 대통령이 소수자를 배려하고 기득권과 맞서는 모습을 존경했다. 내 초상화에 그런 모습을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25일 봉하마을을 방문해 직접 조문하고 왔다는 그는 “별이 떨어져 세상이 캄캄한 느낌”이라며 “그나마 지금 많은 사람들이 고인을 추모하고 재평가하고 있어 조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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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세상 속으로 l 2009/05/2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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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릉· 영릉 등 조선시대 왕릉 40기 모두가 오는 6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가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석굴암, 팔만대장경, 종묘 등에 이어 9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세계 문화유산을 평가하는 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가 조선왕릉을 실사한 뒤 최근 유네스코에 제출한 평가보고서에서 ‘등재권고’ 판정을 했다”고 13일 밝혔다. ICOMOS는 지난해 9월 21일부터 29일까지 8일간 정릉을 비롯한 조선왕릉 40기 전체를 실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이 지난해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조선왕릉’은 오는 6월 22~30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리는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승인 절차만을 남겨두게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지금까지 ICOMOS의 결정을 유네스코가 거의 100% 수용했다는 점에서 조선왕릉 40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는 확실시된다”고 말했다.

 ‘조선왕릉’은 조선시대(1392~1910년) 27대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을 망라한 것으로, 한 왕조의 무덤이 이렇게 온전하게 보존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조선시대 왕족의 무덤은 모두 119이지만 이 중 왕과 왕비, 또 사후에 추숭된 왕과 왕비의 능인 왕릉은 총 42기다. 이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제릉(1대 태조 원비 신의왕후의 능)과 후릉(2대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을 제외한 서울·경기·강원 지역의 40기가 지난해 세계유산으로 신청됐다.

 ICOMOS 평가결과에 따르면 조선왕릉은 유교적, 풍수적 전통을 기반으로 한 독특한 건축과 조경양식으로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현재까지도 제례의식 등 무형유산을 통해 역사적인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선왕릉 전체가 통합적으로 보존관리되고 있는 것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조선왕릉이 세계유산으로 최종 결정되면 석굴암·불국사(1995), 해인사장경판전(1995), 종묘(1995), 창덕궁(1997),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2000),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2000),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2007)에 이어 국내 9번째 세계유산이 된다.

또 종묘, 창덕궁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조선왕조 유산이 세계유산이 돼 조선왕조의 문화적 우수성과 독창성을 인정받게 됐다. 또 ICOMOS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등재 신청한 문화유산 29건 중 ‘등재권고’ 판정을 받은 것은 조선왕릉을 포함해 10건(34%)에 불과해 세계유산 등재심사가 치열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왕릉 전문가인 정재훈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는 “조선왕릉은 한국의 독자적인 문화, 중국의 성리학 이론, 그리고 국내의 자연경관을 적절하게 융합했으며 공간배치, 석물의 조형도 빼어난데다 보존상태가 양호해 세계유산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 신청한 ‘한국의 백악기 공룡해안’은 발자국 화석만으로는 세계유산적 가치가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등재불가’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등재불가로 최종 결정되면 재신청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등재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결정 이전에 유산등재 신청을 철회한다는 방침이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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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세상 속으로 l 2009/05/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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