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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중동포인 장률 감독의 작품은 한없이 느리고 한가롭지만 그 안에 폭발적인 긴장감을 품고 있다. 완전한 중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그 경계에 놓인 장률 감독은 ‘망종’ ‘경계’ 등의 작품을 내놓으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이번엔 중국 최대 도시 중경(충칭)과 30년 전 기차역 폭발 사고의 아픔을 가진 이리(익산)를 카메라에 담았다.

‘중경’과 ‘이리’는 애초 한 편의 영화로 기획되었던 작품이었다. 1977년 이리역 폭발사고를 모티브로 시작된 ‘이리’는 처음 절반은 중국 충칭에서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익산에서 촬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앞부분인 충칭의 촬영만으로도 하나의 이야기가 완성돼 결국 영화는 ‘중경’과 ‘이리’ 두 편으로 나뉘어 개봉하게 됐다. ‘중경’은 6일, ‘이리’는 13일로 일주일 간격으로 차례로 개봉한다.

◆위태로운 가족과 성(性)=‘중경’과 ‘이리’에는 두 남녀로 이뤄진 위태로운 가족이 등장한다. 각각 부녀와 남매인 이들은 삶의 피로와 상처를 고스란히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서로에게 짐이 된다.

‘중경’에서 외국인들에게 북경어를 가르치는 쑤이(궈커위)는 아버지와 단둘이 산다. 함께 식사를 해도 부녀는 끝내 말이 없다. 늙은 아버지는 쓰레기를 주워 그 돈으로 매춘을 하고, 어느 날 매매춘 혐의로 공안에 검거된다. 경관인 왕위의 호의로 아버지가 무사히 풀려나게 되자 쑤이는 왕위와 하룻밤을 보낸다. 쑤이는 엄마 무덤가에 찾아가 “아빠는 계속 부끄러운 짓을 하고 있고, 나는 점점 더러워져 가”라고 내뱉는다. 아버지와 딸, 그리고 경찰 왕위 등의 타락한 성(性)을 통해 장률 감독은 지금의 중국 현실을 담고 있다.

쑤이는 딸뻘인 젊은 여자들과 매춘을 하는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아버지는 충칭 토박이이면서 북경어만 고집하는 쑤이에게 “네 표준어가 듣기 싫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를 못마땅해 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부녀는 끝내 화해하지 못한다.

‘이리’에서 진서(윤진서)는 30년 전 이리역 폭발 당시 엄마의 뱃속에서 사고의 미진을 받았다. 폭발사고 다음해 진서는 태어났고, 엄마는 진서를 낳다 죽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고 여린 영혼을 가진 진서는 오빠 태웅(엄태웅)과 단둘이 살아간다. 사람들은 한없이 순수하기만 한 진서를 ‘바보’로 낙인 찍고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안긴다. 그가 일하는 작은 학원의 사장은 월급을 체납하고, 동네 여러 남자들은 그녀를 성노리개로 삼는다. 진서를 옆에서 지켜보며 보살피던 오빠 태웅은 점차 지쳐가고, 결국 진서를 데리고 바다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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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직전의 도시와 폭발 후의 도시
=‘중경’과 ‘이리’는 도시 이름을 제목 그대로 담았듯 공간이 만드는 영화다. 장 감독이 보기에 인구 3000만명의 거대한 도시 중경은 물질에 대한 욕망, 허무함, 황폐함 등으로 가득한 폭발 직전의 도시다. 장률 감독은 “‘중경’이 폭발 직전에 있는 사람들과 공간을 찍은 것이라면 ‘이리’는 이미 폭파되고 잔해만 남은 풍경과 사람을 찍었다”고 말한다.

장 감독은 “제작사에서 먼저 이리 폭발사건을 다루는 영화를 제작하자고 제의해왔는데 처음에는 거절했다. 이리라는 도시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일 사고가 나지만 사람들이 금방 잊어버리는 것을 보고 사고 후 힘겨워 하는 당사자들의 아픔을 같이 겪고 위로하는 것이 예술이라는 생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장률 감독은 일제 강점기인 할아버지 대에 만주로 이주한 재중동포다. 옌볜대를 졸업하고 소설가 겸 중국문학 교수였던 그는 중국어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한다. 한국에 살아본 적이 없는 이방인이지만 한중 경계인으로서 그는 한국에 대해 “폭발이 끝나고 난 다음의 황폐함이 느껴지는 나라”라고 얘기했다. 또 “그래서 폭발하고 난 곳에서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마주하기 위해 ‘이리’를 찍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으로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낸 감독의 차기작은 탈북자를 소재로 한 ‘두만강’이다.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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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영화 & TV l 2008/11/1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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