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CoolHot



동성애는 지금도 터부시되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퀴어아이’ ‘윌 앤 그레이스’ 등 최근의 미국 인기 TV쇼는 남자 동성애자를 ‘트렌디하고 멋진 도시 남성’으로 인식하게 했다. 동성애가 더욱 금기시됐던 보수적인 1960년대의 미국 남부, 동성애자라는 의심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의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그 시절, 두 남자가 사랑에 빠진다.

애니 프루의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이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은 목장일을 하며 로데오를 즐기는 흙먼지 나는 남자, 스타일리시한 도시 남성과는 거리가 먼 투박한 카우보이들의 가슴 시린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1963년 가난하고 고등교육도 받지 못한 갓 스무 살의 두 남자 이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은 어느 여름 한철 동안 로키 산맥의 브로크백 산에서 일하게 된다. 한 조가 돼 깊은 산 속에 들어간 이들은 낮밤으로 양을 몰고 야영을 하며 지낸다. 어느날 밤 얘기를 나누다가 취한 두 사람. 좁은 텐트에서 함께 잠을 자다가 우연히 그리고 갑자기 욕정에 휩싸여 몸을 섞게 된다. 그렇게 기이하고 마법같은 일이 벌어진 다음날 “어제 있었던 일은 없던 일로 하자. 난 게이가 아니야”라는 에니스의 말에 잭은 “나도 아니야”라고 되받는다. 하지만 넓고 한없이 자비로운 대자연인 브로크백 산에서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서로의 몸을 탐하게 된다.

수일동안의 목장일이 끝나고 두 사람은 담담하게 “언젠가 또 보자”며 각자의 고향으로 향한다. 차의 백미러로 에니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잭과 담담히 걷다 어느 순간 무너지며 울부짖는 에니스의 모습을 통해 이들의 관계가 고립된 산 속에서 벌어진 육체적 일탈 그 이상이었음이 드러난다.

일상으로 돌아온 이들은 각자 결혼하며 아이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애를 키우며 일상에 치여 살아가던 두 사람은 잭이 에니스의 집을 방문하면서 4년만에 다시 만나게 된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반갑게 포옹을 나누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곧 다시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그렇게 이들의 비밀스런 사랑은 다시 시작된다.

서로를 그리워했다는 사실을 고백한 두 사람은 낚시를 핑계로 아내를 속이고 간간이 만남을 계속한다. 부잣집 딸과 결혼해 생활의 여유가 있는 잭은 각자 이혼하고 목장을 차려 함께 살자고 하지만, 어린 시절 동성애자의 끔찍한 죽음을 목격했던 에니스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 오래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브로크백 산은 이들이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눈 곳이자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 사랑을 나누기 위해 20년간 이들이 찾는 곳이다. 오직 브로크백 산만이 이들의 사랑을 감춰주고 포용해준다. 가능한 한 오래 지속하자고 했던 이들의 위태로운 관계는 잭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끝이 난다. 에니스는 잭의 고향집을 방문하면서 뒤늦게 잭의 사랑을,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깨닫는다.

좀더 감정에 솔직했던 잭에 비해 무뚝뚝하고 보수적인 에니스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지만, 보잘 것 없는 트레일러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는 그의 마지막 다짐은 강렬하고 슬픈 러브 스토리의 감동적인 마침표가 된다.

이안 감독은 넓고 스펙터클한 미국 록키 산의 자연과 함께 각자 비밀을 간직한 채 엇갈린 사랑으로 고통받는 네 명의 내면을 섬세하게 화면에 담았다. 대만 출신인 감독은 이방인의 시선으로 광활하지만 쓸쓸한 미국을 거장다운 안목으로 표현해냈다. 영화는 약 20년을 담아내기 때문에 빠르고 간결하고 섬세하게 흘러간다.적은 내용으로 보이지 않는 내용과 숨겨져 있는 내용까지 담아낸 군더더기 없는 연출력이 돋보인다.

20대부터 40대까지 카우보이이자 금지된 사랑을 나누는 카우보이를 연기한 두 주연배우의 연기는 극찬받을 만하다. 또 남편의 비밀을 알고도 모른척하며 몰래 눈물을 흘리는 아내 알마의 절망적인 눈빛 연기도 인상적이다.

영화는 눈덮인 산붕우리 아래 푸른 초원이 펼쳐진 광활한 브로크백 산이라는 볼거리와 함께 멋진 음악도 들려준다. 영화가 끝난 후 엔딩 크레딧과 함께 들려오는 ‘He was a friend of mine’과 ‘The maker makes’는 영화 내용과 절묘하게 어울리며 관객의 감정을 더욱 고양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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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영화 & TV l 2006/02/07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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