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CoolHot



때묻은 도시 남자가 순수한 시골 여자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산다. 멜로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줄거리가 이런 것이라면 영화 ‘행복’은 그 이후까지 나아간다. 행복은 잠시다. 사랑은 흔들리고 행복은 깨진다. 그리고 그 사랑을 흔드는 것은 주위의 반대나 불치병과 같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단지 마음이 변한 탓이다.

허진호 감독의 네 번째 사랑 이야기 ‘행복’은 낭만적인 동화 같은 로맨스가 아니라 달콤하면서도 쓰디쓴 현실의 로맨스를 그렸다. 사랑은 영원하기는커녕 쉽게 변하는 것이다. 사랑의 맹세는 처음엔 견고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부서진다. “너 없으면 못 살 것 같아”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너 때문에 미치겠어, 니가 먼저 헤어지자고 얘기 좀 해줘”라는 잔인한 비수로 변한다. 사랑의 단면을 섬세한 통찰력으로 전해온 허진호 감독은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사랑의 설렘을, ‘봄날은 간다’에서 사랑이 변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이 두 가지 모두를 담아냈다.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자유분방하게 살던 영수(황정민)는 방탕한 생활로 삶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가게는 망하고 애인과 헤어지고 간경변까지 얻은 그는 쫓기듯 시골 요양원으로 온다. 거기서 만난 여자 은희(임수정)는 숨이 차면 죽을 수도 있는 중증 폐질환 환자지만 순수하고 밝은 기운으로 영수를 변화시킨다. 두 사람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손을 잡고 키스를 하고 함께 밤을 보내는 등 보통 연인들처럼 달콤한 연애를 시작한다.

“우리 같이 살래요?”라는 은희의 제안에 따라 이들은 요양원을 나와 살림을 꾸린다. 은희의 정성어린 보살핌으로 병이 완치된 영수는 마냥 행복한 은희와 달리 시골에서의 삶이 지루해지기 시작한다. 도시에 사는 쿨한 옛 애인도 다시 그를 유혹해온다. 사랑에 균열이 생기고 이윽고 남자는 여자를 내버려두고 매몰차게 떠난다.

영화는 몸이 아픈 두 남녀의 연애를 통해 뜨거웠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쉽게 식어버리는 사랑의 잔인한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또 나쁜 남자가 착한 여자로 인해 진정한 사랑과 구원을 얻는다는 ‘미녀와 야수’식의 멜로 신화도 깨트린다. 하지만 감독의 깔끔한 전작들에 비해 몇몇 신파적인 설정도 눈에 띈다. 죽음과 병, 떠나지 말라는 눈물의 애원, 그리고 인과응보의 결말, 참회와 구원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영화는 현실 속 연애와 닮아 있어 사랑의 단맛과 쓴맛을 겪어본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너는 내 운명’에서 죽어도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박한 농촌 남자 석중 역을 맡았던 황정민은 이 영화에서 마음이 식어 여자를 떠나는 나쁜 남자로 180도 변신했다. 또 임수정은 기존의 소녀 이미지를 벗고 사랑의 아픔을 겪는 여인으로 성공적인 변화와 거듭나기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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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영화 & TV l 2007/10/08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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