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뮤지컬에 이어 드라마, 영화까지. 배우 오만석의 지칠 줄 모르는 영역 확장은 계속되고 있다. “다 재미있지만, 연극과 뮤지컬은 편하고,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배우는 과정이 재미있다”는 그는 여기에 밴드 활동까지 하고 있는 데다 내년엔 뮤지컬 연출가로도 데뷔한다. 이쯤 되면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신은 욕심쟁이! 우후훗∼’
뮤지컬 ‘헤드윅’의 트렌스젠더, 드라마 ‘포도밭 그 사나이’의 순박한 시골청년에서 최근 ‘왕과 나’의 내시까지 맡은 배역마다 그만의 특별한 캐릭터를 선보인 그는 이번엔 영화 ‘우리 동네’에서 충동적인 살인마로 변신해 동물적인 에너지를 뿜어낸다. ‘천의 얼굴’을 가진 그의 진짜 모습은 뭘까?
“저도 제 본모습이 뭔지 잘 모르겠어요. 배우를 한다는 건 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저도 궁금합니다. 내 안에 또 뭐가 있을까 하고. 매번 한계에 부딪히면서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찾고 있어요. ‘오만석’이란 역을 하기 전까지는 저도 제 자신을 알 수 없을 것 같아요.”
영화 ‘우리 동네’에서 배고픈 추리소설 작가이자 살인마가 됐던 그는 실제 성격도 거칠어졌다고. “한 작품을 계속 하다 보면 촬영장을 나와서도 그 캐릭터를 닮게 돼요. 심지어 젓가락질도 달라질 만큼 일상생활에 조금씩 묻어나게 되죠.” 일례로 ‘우리 동네’의 살인마를 연기할 때는 밖에서도 말투가 거칠고 툭툭 튀어나왔다. 하지만, 최근 ‘왕과 나’의 김처선을 연기하면서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말투로 바뀌었다.
두 명의 살인마가 한 동네에 산다는 설정의 ‘우리 동네’는 치밀한 연쇄살인마 효이(류덕환)와 충동적인 모방살인범 경주(오만석)의 살인 이유와 그 관계를 풀어놓은 스릴러 영화다.
오만석이 연기한 ‘경주’는 사이코패스류의 냉철하고 주도면밀한 살인마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기존 살인마와 달리, 살인 후 죄의식과 초조함이 엿보이는 불안한 캐릭터다. 오만석은 악마 같은 본능과 평범한 인간의 성품을 모두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잔인하기도 하면서 어수룩하고 불쌍하기도 한 인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인간에게 감성과 이성이 있다면, 어떤 때는 이성이 감성을 누르지만, 또 어떤 때는 갑자기 내부의 감정이 울컥해서 감성이 이성을 누르죠. 현대인에게 이런 경향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어떤 장르든 가리지 않는 그이지만 휴먼드라마에 가장 끌린단다. “정말 감동적인 휴먼드라마나 배꼽 빠지게 웃을 수 있는 휴먼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요.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해학과 웃음이 있는 그런 작품이요.”
올해는 드라마와 영화에 주력했지만, 내년엔 다시 뮤지컬에 집중할 생각이다. 우선, 내년 여름쯤에 ‘내 마음의 풍금’에 출연하고, 연말엔 창작 뮤지컬 ‘즐거운 인생’의 연출을 직접 맡는다. 또 밴드 ‘리틀윙’의 기념앨범도 내년쯤 출시할 예정이다. 그의 욕심과 열정은 그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 듯했다.
그에게 있어 배우란 직업은 “손에서 놓고 싶어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힘들면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죠. 너무 힘들어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또 하고 싶은 거예요. 나이가 들어서도 내가 좋아하는 공연, 영화, 드라마를 열심히 할 수 있는 체력, 열정, 힘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영화 <우리동네>는
‘우리 동네’는 연쇄살인과 모방 살인을 소재로 삼은 스릴러물이지만, 누가 범인인지, 어떻게 범인을 잡는지를 추적하는 일반 스릴러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영화는 누가 살인마인지를 먼저 밝히고 시작한다. 살인마와 형사의 대결 대신 살인마와 살인마, 살인마와 형사의 ‘관계’에 주목한다.
서울의 어느 변두리 동네에서 끔찍한 연쇄살인이 벌어진다. 가난한 추리소설 작가 경주(오만석)는 밀린 집세를 내라고 타박하는 집주인 여자를 우발적으로 죽인다. 망연자실한 그는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연쇄살인범의 짓으로 꾸민다.
하지만, 진짜 연쇄살인범 효이(류덕환)가 경주를 옥죄어 오고, 경주의 절친한 친구인 형사 재신(이선균)은 경주가 범인임을 알게 된다.
이들 세 사람은 같은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죄의식과 정으로 서로 맞물린 이들의 관계를 드러낸다.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처럼 풀리지 않는 관계의 순환 고리를 보여준다.
영화는 스릴러의 익숙한 소재로 인간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악마성과 죄의식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독창적이다. 29일 개봉.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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