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 소녀의 임신은 이제 더 이상 충격적인 얘기가 아니라 달콤쌉싸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배불뚝이 열여섯 살 소녀 ‘주노’가 할리우드를 사로잡았다. 250만 달러의 저예산 영화지만 미국에서 1억 달러의 수익을 넘어섰으며 10주째 장기상영되고 있다.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듯 담담하게 펼쳐낸 ‘주노’는 미국에서도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모두 찬사를 받았다. 마침 ‘주노’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져 영화는 더욱 주목을 받았다.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여동생인 16세의 제이미 린 스피어스가 임신 사실을 공개하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겠다고 밝힌 것이다. 십대의 성과 임신은 여전히 논란거리이며 금기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이고 또 동시에 극복해내야 하는 일이다. 영화 ‘주노’는 그 과정을 발랄하고 섬세하고 담담하게 그려냈다.
◆ 위트와 따뜻함으로 버무린 성장영화
열여섯 여고생이 임신했다니, 짙은 화장에 미니스커트를 입은 날라리냐고? 주노는 청바지와 남방에 스니커즈, 머리는 대충 질끈 하나로 묶고 다닌다. 또 슬래셔 무비와 하드코어 록을 좋아하는 쿨한 소녀다. ‘첫경험’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주노는 친구 블리커를 그 대상으로 정한다. 소파 위에서 일을 치른 두 달 뒤 주노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망설이던 주노는 낙태를 포기하고 불임으로 고민하는 바네사 부부에게 아이를 낳아 주기로 한다.
영화의 매력은 90% 이상이 여주인공 주노의 매력에서 비롯된다. 주노는 마치 제인 오스틴 소설 속 주인공처럼 냉소적 유머와 위트를 지녔다. 시니컬하고 낮은 목소리로 무심한 듯 내뱉는 유머는 주노의 독립심과 당당함을 더욱 빛나게 해준다.
현실 속에서 주노는 마을 사람들과 학교 친구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큰 상처를 받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낙천적 판타지를 가미한 이 영화는 주인공 주노를 꿋꿋하고 당당한 소녀로 그렸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부모도 처음엔 충격을 받지만, 곧 나서서 주노의 몸조리를 도와준다. 학교 친구들 역시 주노의 부른 배를 신기하게 볼지언정 비난하지는 않는다. 영화 전체를 휘감는 위트와 쿨함은 이 영화를 독특하고 참신하게 만들었다.
◆ 한국영화 ‘제니, 주노’와의 연관성 논란
‘주노’는 십대의 임신이라는 민감한 소재를 발랄한 터치로 그려냈다는 점에서 한국영화 ‘제니, 주노’(2005년)가 연상된다. ‘제니, 주노’와 유사하다는 논란은 미국에서 먼저 제기됐다. 두 영화는 소재뿐만 아니라 제목까지 비슷해 리메이크작이거나 표절이라는 논란에 휩싸였다.
영화사 측은 “주노라는 이름은 그리스 로마신화의 여신 주노(헤라)에서 따온 것이며, ‘제니, 주노’의 주노는 남자지만 ‘주노’는 여주인공 이름”이라며 유사성을 부인했다. 이 영화로 각종 각본상을 수상한 작가 디아블로 코디는 유사성 논란이 계속되자 지난해 10월 자신의 블로그에 “내 시나리오와 비슷한 한국영화 ‘제니, 주노’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난 이 영화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고 밝혔다. 또 ‘제니, 주노’를 연출한 김호준 감독 역시 표절 논란에 대해 “소재는 비슷하지만 ‘주노’가 내 영화를 베꼈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2005년 국내 개봉한 ‘제니, 주노’는 15세 중학생 남녀의 성과 임신을 다뤄 당시 중학생의 성을 상품화한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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