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쿨핫



 간송미술관. 작고 낡았어도 국내 최고 사립미술관 중 하나다. (소장품이 장난 아니다!) 일년에 단 두번 정기 전시회를 하는데 작년 가을 전시는 혜원 신윤복 전시로 더 많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엄청 몰렸는데 미술관 측도 몇명이나 왔는지 집계를 못 한다고 했다.
아무튼 매년 봄과 가을, 어떤 전시를 선보일지 기다려지는 간송미술관이 올해는 겸재 정선을 주제로 삼았다. 올해는 겸재 정선 탄생 333주년이자 서거 25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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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때 그린 '금강내산'>

 
 올해는 겸재 정선(1676∼1759)이 서거한 지 2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은 봄 정기 전시회에서 겸재 정선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전시를 선보인다.

 국보급 미술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일 년에 단 두 번(5월과 10월) 각각 보름간만 일반에 공개한다. 매번 겸재, 단원, 혜원 등 조선시대 명품 미술품이 공개되기 때문에 간송미술관 전시는 언제나 큰 주목을 받는다.

 중요 미술품을 수집해 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은 특히 겸재 그림을 집중적으로 수집했다. 간송미술관에서 처음 열린 전시 역시 겸재 전시였다. 간송미술관은 1971년 가을 제1회 전시회에서 겸재전을 연 데 이어 1981년 진경산수화전, 1985년 진경시대전, 1988년 진경풍속전, 1993년 겸재진경산수화전, 2004년 66회 대겸재전 등 모두 6차례 전시를 열었다. 또 첫 전시 이후 겸재 연구를 시작해 매 전시 때마다 겸재 연구 결과를 발표해왔다. 40여년간 겸재를 연구해온 최완수 연구실장은 올해 하반기 겸재의 일대기와 작품 세계를 다룬 평전을 출간할 예정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겸재가 41세 때 첫 벼슬로 관상감 천문학 겸교수(종6품)에 올랐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번 감송미술관 76회 정기 전시는 겸재 서거 250주년을 맞아 겸재 전시와 연구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자리다. 이름은 ‘겸재 서거 250주년 겸재 화파전’이다.

 겸재는 동양화의 양대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 필법과 묵법에 정통해 필묵을 한 화면에 이상적으로 조화시키는 방법으로 진경산수화법을 창안했다. 최 실장은 “암산절벽은 필법으로 처리하고 숲이 우거진 토산수림은 묵법으로 처리했다”며 “여기에 토산수림이 암산절벽을 감싸서 음양조화를 이루게 하거나 토산과 암산이 마주보게 해 음양대비를 이루게 하는 화면구성법을 구사했다”고 설명했다. 겸재는 ‘주역’에 밝아 음양조화와 음양대비의 원리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최 실장은 “‘주역’과 필법 모두 중국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를 한꺼번에 적용시킨 사람은 중국에서조차 없었기 때문에 당시 겸재 그림은 중국에서도 인기였다”고 설명했다.

 36세 때 금강산을 처음 여행한 겸재는 금강산의 빼어난 풍경을 그린 21폭의 ‘해악전신첩’을 그렸다. 이어 72세 때 다시 한번 금강산의 황홀한 경치를 그리기로 마음먹고 ‘해악전신첩’을 다시 꾸며냈다. 젊은 시절 그린 ‘해악전신첩’(일명 ‘신묘년풍악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이 패기 넘치는 젊은 작가의 작품답게 필법이 날카롭고 묵법이 엄정하다면, 72세 때 그린 ‘해악전신첩’은 노대가의 그림답게 달관과 확신으로 가득차 필법은 부드럽게 세련되고 묵법은 거침없다. 하지만 필묵 사용의 기본 정신과 음양 조화의 화면 구성 원칙은 철저히 고수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또 겸재는 63세 이후 화법이 완성돼 진경 기법의 진면목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64세 때 그린 ‘청풍계’는 그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어 겸재의 그림은 노년으로 갈수록 추상화 경향을 보인다. 80세에 그린 ‘사문탈사’ 등은 그림이 더욱 단순화, 추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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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풍계>


겸재는 당시 상류층과 하층민 모두에게 인기였다. 당시에 겸재 그림이 안 걸린 집이 없을 정도였다. 최 실장은 “당시에도 겸재의 그림은 4∼5인 가족이 반년 먹을 농토값에 맞먹을 정도로 고가였지만 그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겸재는 영조의 후원을 받았다. 그는 영조가 어렸을 때 사저에서 직접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었다. 영조는 겸재를 평생 이름이 아닌 호 ‘겸재’로 불렀다. 최 실장은 “임금이 호를 부른다는 것은 스승에게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영조는 또 겸재가 65세 때 지금 서울 강서구의 양천현령으로 발령했다. 이 곳은 한강과 함께 삼각산, 북악산, 인왕산이 보이는 곳으로 겸재로 하여금 마음 놓고 한강 주변의 승경을 그리도록 한 배려였다. 겸재는 이 곳에 지내면서 한강 주변의 풍경을 그린 ‘경교명승첩’을 그려냈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강산을 그린 ‘해악전신첩’, 한강 주변을 그린 ‘경교명승첩’, 관동팔경을 그린 ‘관동명승첩’, 또 말년의 초충도 등 겸재의 화풍을 아우르는 80여점이 내걸린다. 또 겸재 화풍을 계승한 후배 화가들의 그림도 함께 전시된다. 심사정, 김홍도, 김득신, 신윤복 등 유명 화가뿐만 아니라 겸재를 좋아해 이름까지 바꾼 김희겸 등의 그림이 선보인다. 최 실장은 “‘진경 시대’는 조선 숙종과 영정조 시절 125여년으로 볼 수 있는데 겸재는 숙종 2년에 태어나 84년을 살았다. 진경시대의 3분의 2를 살며 진경 시대의 절정을 이끌어 갔다”며 “겸재가 워낙 두각을 나타내 그 후신들이 빛을 발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최 실장은 또 “겸재 정선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정확히 짚어내 표현했다”며 “우리나라 회화 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화가로 화성(畵聖)의 칭호를 올려야 마땅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5월 17∼31일.

김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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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예술의 발견 l 2009/05/12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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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은 소박한 미술관이다. 최초의 사립미술관으로 70년 된 작고 낡은 건물이 전부이지만 안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을 품고 있다. ‘훈민정음’, 신윤복의 ‘미인도’와 ‘혜원풍속도’, 청자운학상감문배병, 김득신의 ‘파적도’ 등 유명 문화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간송미술관은 또 상설전이 없어 일년에 봄, 가을(5월, 10월) 단 두번만 전시를 여는 만나기 힘든 미술관이기도 하다. 올 가을에도 간송미술관은 12일부터 26일까지 딱 보름간 작품을 선보인다.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 여는 전시는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전’이다.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의 옛 이름으로, 간송(澗松) 전형필(1906~1962)이 1938년에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다. 사비를 털어 우리 문화재를 수집한 그는 이 미술관에 ‘조선의 보배를 모은 집’이라는 ‘보화각’ 현판을 내걸었다. 이후 간송미술관으로 이름을 바꿨으며 1971년 가을부터 매년 봄가을 소장품 중심의 기획전을 열고 있다. 올해 전시에는 조선의 서화 100여점이 공개됐다.

 조선 초·중기의 유자미(?~1462), 이경윤(1545~1611) 등을 거쳐 진경산수화의 겸재 정선(1676~1759), 추사 김정희(1786~1856)의 작품이 전시된다. 특히, 이번 전시가 관심을 끄는 것은 혜원 신윤복의 대표작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인도’뿐만 아니라 국보 135호인 ‘혜원전신첩’에 실린 ‘주유청강(舟遊淸江)’ ‘월하정인(月下情人)’ ‘야금모행(夜禁冒行)’ ‘단오풍정(端午風情)’ ‘계변가화(溪邊佳話)’ 등이 한꺼번에 외출했다. 이에 따라 최근 드라마 ‘바람의 화원’이 인기를 끌면서 신윤복의 그림을 실제로 보려는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비좁은 공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다 보니, 전시를 천천히 음미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려야 작품 하나를 겨우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섬세하고 색이 고운 신윤복의 에로티시즘이 돋보이는 작품을 직접 마주하면 줄을 서서 기다린 짜증이 눈 녹듯 사라진다.

 개관 첫날인 12일엔 2만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뤄 미술관 밖 언덕길까지 줄을 서야 했다. 평일엔 이보다 덜하지만 붐비기는 마찬가지다. 미술관 측은 2주동안 20만명이 찾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일을 통해 낙후된 관람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간송미술관이 좀더 넓은 공간으로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대학생 때 이어 두번째 방문한 간송미술관은 작품은 만족스러우나 관람 환경은 여전히 매우 불만족스런 수준이었다. 건물이나 기간을 변경할 수 없다면, 최소한 작품을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처럼 벽걸이 형태로 배열했으면 한다. 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지만, 좀 멀리서라도 어쨌든 볼 수는 있다. 간송미술관의 유명 작품들은 대부분 전시관 안에 누워(?) 있어서 그 앞을 지나가야 볼 수 있는 구조다. 그래서 비좁은 미술관이 더 힘들게 느껴진다.

 
단오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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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청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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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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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kimjihee
예술의 발견 l 2008/10/2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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