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님은 먼곳에'에 관해 이전에 썼던 글에 일부 오해가 있는 듯해 몇가지 변명(?)과 영화에 관해 더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님은 먼곳에, 여전히 불만족스런 여성캐릭터>란 글에서 저는 여자 시각으로 봤을때 순이 캐릭터의 완성도면에서 일부 불만인 점을 썼고, 일부 독자들께서 제 글을 비판했습니다. 이분들이 비난한 것처럼 제가 '여장부'나 '여전사' 순이, 또는 70년대 순이에게 똑부러지고 당찬 21세기 여성같은 순이를 바란게 아닙니다.
순이가 왜 무심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가고, 오매불망 남편만을 찾는가라는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이유와 시각이 있지만, 저는 그게 모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오기 또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에서도 썼듯, 시댁에서도 이쁨받지 못하고 게다가 친정까지 '출가외인'이라며 순이를 쫓아냅니다. -_-;;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친정에게서도 버림받은 순이는 베트남행을 결심합니다. 아마도 사랑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건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순이는 용감했습니다. 여전히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대신 남편을 찾겠다는 끈기를 보여줍니다.
또 순이가 전쟁터 가수 경험을 통해 점차 강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대 위에서 점점 자시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앞서 제가 지적한 건 그 직접적 계기가 섹슈얼리티 때문이라는 겁니다. 순이는 가수로서 노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성, 섹시한 몸과 몸짓을 통해 환호받는 것으로 영화에 나옵니다. 그 시절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에서 그러한 묘사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는 오로지 그 측면만 부각돼 나옵니다. 순이가 노래를 통해 전쟁에 지친 영혼들을 보듬어 주는 장면은 헬리곱터 장면만이 유일합니다.
뒤늦게 '씨네21'의 이준익 감독 인터뷰를 봤더니,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의 남자들은 순이를 한번도 성적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군 중령과의 관계도 그렇다. 모든건 순이의 선택이다... 오히려 순이가 '나는 한국으로 못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의 성적 도구화라는 클리셰를 역전시킨 것인데 그걸 못 읽어내고 되레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순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서, 남자들이 순이를 강제로 성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자의 성적 도구가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즉, 여자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몸을 팔면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된 게 아니다??? 도대체 어떤 클리셰를 역전시켰다는 것입니까...??
또 이준익 감독이나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남자들을 용서하는 순이'라는 시각, 한마디로 순이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모성같은 사랑을 가졌다는 것인데... 갓 스무살을 넘긴 젊은여자(게다가 애도 안 낳아본 어린여자)에게까지 '위대한 모성'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건 너무 진부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남자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이며 최고의 찬사는 '모성'밖에 없는 것인지...
차라리 70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 몸과 마음이 메여있던 순이가, 마침 갈 곳이 없게 돼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자기를 억압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털어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또 가수로서 또 스무살쯤의 여자로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미국식으로 보는것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말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영화 속 베트남 전쟁은 우리의 시각으로 반성하기보다는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요즘 전쟁영화의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시각을 보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님은 먼곳에'를 다소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꼈지만 꽤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그건 순전히 마지막 장면 때문입니다. 순이가 상길을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저 자식 한대 확 패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_-; 그런데 예상 반, 예상외 반으로 순이는 정말 그러더군요. 그 순종적이고 순애보적으로 보였던 순이가 전쟁에 지친 남편을 만나자마자 한 행동은 따뜻하게 보듬어주는게 아니라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순이의 행동은 속좁은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미워서 한대 패주고 싶은)보다 훨씬 복합적인 감정이었겠지요. 비난, 질책, 원망, 사랑, 포용 등이 모두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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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님은 먼곳에 : 괴리감, 이질감, 불쾌함의 3종세트
Tracked from 『un petit voyage : season 2』 삭제괴리감에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멋진 마지막 엔딩?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마지막 장면은 좋았다. 그런데 웃긴 건 뭔 줄 알아요? 멋지다 못해 환상적인 감동을 응축해놓은 엔딩, 그 한 씬으로 이 영화의 모든 의문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아 먹어야만 진정 영화를 즐길 줄 안다는 식으로 공공연하게 떠들고들 있어서 이 영화가 대체 뭐라고 대놓고 불쾌하다는 심사를 드러내기조차 곤란하단 말이냐고. 좋았다는 사람들의 리뷰를 몇 개..
2008/07/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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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표 여성성 고찰의 시선이 저는 참 못마땅하더라고요. 물론 영화가 저질에 쓰레기 같다고 느껴본 적 없습니다. 다만 감독의 그런 시선때문에 불쾌했고.. 정작 본인도 인터뷰 글을 보면 모순적인 발언을 하고 있고요. 아무튼 '여성성' 관련해 나오면.... 참... 악플이 난무하네요! ^^ + 저는 다시 본다 해도 이 영화가 그린,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여성성의 위대함에 대해 쉽게 납득하기는 힘들겠더라고요.
2008/07/27 14:45님 의견에 저도 대부분 공감합니다. 특히, 저도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는 부분 '여성의 눈으로 본 남성성 또는 전쟁의 고찰'이라는 부분도 정말 이해하기 힘들구요. 이런 부분을 지적하면 '꼴통 페미'로 비난받고요...-_-;;
2008/07/27 15:36님도 지적한 여성의 위대함, 모성... 이런 부분은 저도 정말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70년대라는 아직은 여성의 입지가 열악했던 시대적 상황, 전쟁터라는 공간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순이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 여성이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이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여전히 씁쓸합니다.
2008/07/28 19:43영화의 큰 줄기와는 별개로 위문공연을 하기 위해 정만이 순이의 치마를 걷어내는 장면, 순이가 공연 중 군인들에게 속옷을 던지는 장면, 미군 중령과 모종의 거래를 하는 장면을 보며 식겁했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며 '역시 전쟁은 노노~세상이 미쳐돌아가~' 이런 생각만 가득...-_-;;;
세차게 상길의 뺨을 후려친 순이가 탁탁 손을 털고 상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에필로그를 상상하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그러나...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네요. 7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아직은 인생경험이 부족하기에 그런가 봅니다.
저랑 같은 의견이시라 반갑네요 ^^
2008/07/29 16:20저도 그런 점이 보는내내 조금 불편했습니다.
상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에필로그라.. 그 이후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괜찮은 엔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