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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장가가 모처럼 다양한 장르의 풍성한 상차림으로 가을 관객을 유혹하고 있다. 특히 18일엔 여자들에 의한, 여자들을 위한, 여자들의 영화 두 편이 나란히 개봉해 눈길을 끈다.
조선 후기 궁녀들의 감춰진 삶을 드러낸 ‘궁녀’와 현대 대도시 서울에 사는 30대 여성의 이야기 ‘어깨너머의 연인’을 만든 감독은 모두 여성이다. 두 영화는 감독과 주인공들이 여성이라는 점만 같을 뿐 소재, 장르, 스타일 등은 전혀 달라 골라보는 재미도 함께 선사한다. 같은 땅에 살았지만, 과거와 현대에 사는 여성들의 삶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은밀한 욕망을 숨긴 채 규율에 맞춰 살아야 했던 게 과거 여성이라면, 현대 여성은 자신의 욕구에 좀더 솔직하다. 하지만 두 시대 여성 모두 마음속 각자의 고민을 품고 나름대로 치열하게 살아가는가 하면 또 현실에 순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영화는 여성 감독들이 말하는 여성 이야기라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진부함을 완전히 벗지는 못했다. 신선한 시각 뒤로 어디선가 본 듯한 전형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 궁녀 ‘궁녀’는 정혜승 대표, 김미정 감독, 배우 박진희, 윤세아, 서영희, 임정은 등 제작, 감독, 배우가 모두 여성이라 화제를 모았다. 궁중 미스터리를 표방한 ‘궁녀’는 출발이 좋다. 그동안 감춰졌던 궁녀들의 비밀스런 삶을 조명한 것만으로도 영화는 매혹적이다. 드라마 ‘대장금’이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궁녀를 따뜻한 시각으로 그려냈다면, ‘궁녀’는 거기에 혹독한 규율을 더해 은밀하고 억압적인 궁중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왕과 왕비의 합방을 훔쳐 보는 궁녀의 모습이라든가, 쥐부리글려나 바늘로 손톱밑을 찌르는 등 궁녀들 간의 비밀스런 고문 장면은 기존 사극에서는 볼 수 없던 새로운 것들이다. 숨막힐 듯 엄격한 궁중 안에서 희빈을 모시던 궁녀 월령이 목을 매단 채 발견된다. 내의녀 천령(박진희)은 월령이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과 자살로 위장된 타살이란 점을 알아채고는 사건을 파헤쳐 나간다. 보기 드문 사극 미스터리와 스릴러가 결합돼 흥미를 배가해 가던 영화는 그러나 중반을 넘어가면서부터 힘에 부치고 만다. 시체에서 과학적으로 사망 원인을 살피는 등 조선판 여성 CSI를 연상시키던 초반의 기세 등등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진부한 한국형 전통 호러가 차지해버린다. “의녀에게 귀신이란 없다”고 말하던 천령의 말이 무색하게도 한을 품은 귀신이 사건의 중심에 서 버린다. 갑자기 원한, 복수, 모성이라는 진부한 주제가 튀어나온다. 또 영화는 ‘대장금’이 보여줬던 여성들 간의 연대감은 볼 수 없고, 결국 기존 사극 속 남아 출산으로 그 위치를 다지던 여인들의 뻔한 궁중의 암투를 그려내고 말았다.
![]() >> 어깨너머의 연인 이언희 감독과 고윤희 작가는 실제 30대 초반 여성으로 자신 또는 주변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그려냈다. 서로 너무나도 다른 두 여자가 있다. 정완(이미연)은 잘나가는 사진작가로 결혼과 사랑보다는 일이 우선이다. 결혼하지 않은 채 부담 없는 상대를 만나 연애와 섹스를 한다. 희수(이태란)는 돈 많은 ‘안심보험’ 같은 남자를 만나 일하는 대신 자신을 멋지게 가꾸는 편이 훨씬 적성에 맞는다. 싱글들은 연애에 성공해 결혼하면 모든 게 완성되는 줄 알았건만, 그 이후엔 권태로운 결혼 생활과 바람이란 장애가 떡 버티고 있다. 달라붙지 않는 유부남과 연애를 즐기던 정완은 결국 죄책감을 느껴 그만두고, 희수는 다른 젊은 여자와 바람이 난 남편을 차버렸다가 결국엔 다시 받아들인다. 남편 없이 홀로 살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정녕 여자들의 최종 선택이란 안정된 결혼, 또는 홀로 해외여행 떠나기밖에 없는 것일까? 남편의 소득에 기대어 쇼핑을 즐기는 희수는 ‘된장녀’라고 욕먹을 캐릭터이지만, 영화는 그녀를 비난하기보다 그녀의 선택을 인정하면서 좀더 따뜻한 시각으로 바라본다. 홀로 가난하고 구질구질하게 살기보다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충분히 발휘해 남자 덕에 편하게 살겠다는데 어쩔 것이냐는 거다. 하지만 영화는 ‘여자는 남자 따라 팔자 바뀐다’는 착오적 관념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 |||
'된장녀'에 해당되는 글 2건
- 2007/10/20 궁녀 & 어깨너머의 연인 ★★☆
- 2006/08/25 '된장녀', 그 오랜 오만과 편견 (17)
토요일 친구들을 만나 광화문의 한적한 커피전문점 파스쿠치에 갔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 다음, 무더위도 어느 정도 풀렸고 해서 춥게 느껴지는 실내 대신 야외 테라스에 앉았다. 그때 문득 드는 생각. 누가 우리를 본다면 '된장녀'라고 하지는 않을까?
또 얼마전 회사 앞. 이마에 맺힌 땀과 타는 듯한 목을 식히기 위해 얼음이 둥둥 떠 있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들었다. "나를 된장녀로 볼까"라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지만 옆의 넥타이 부대를 보고 '괜히' 안심한다.
뭐 반은 장난처럼 생각한 것이기는 하지만 왜 내가 이런 쓸데없는 '걱정'을 해야하는걸까. 왜 요즘 20대 여성들이 다같이 '된장녀' 취급을 받으며 비하 대상이 되어야 하는걸까. 인터넷에서 떠돌던 '된장녀'는 요즘 모든 언론들이 다루면서 하나의 문화 현상, 신조어가 되버렸다. 언론에서는 '된장녀'를 대충 '허영심에 가득 찬 젊은 여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된장녀’에 대해 '최근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진 유행어로 자신은 능력이 없지만 돈 많은 남자나 부모에게 기대 외국 명품이나 고급 문화를 지향하는 여성을 말한다. 허영심 많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로 테이크아웃 커피점이나 패밀리 레스토랑을 즐기는 여성까지 된장녀로 불리면서 인터넷에선 남녀 간 논쟁이 뜨겁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제 그만 좀 했으면 좋으련만 '된장녀'는 계속 언론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오늘 아침 한 연예인터넷 매체는 한발 더 나아가, 현상으로서의 '된장녀' 대신 아예 "케이블채널 온스타일의 '섹스 앤 더 시티'가 된장녀의 교과서다"라는 한심한 기사를 써놨다. 내게는 흑인을 '깜둥이'라고 비하하듯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를 그대로 언론에 써놓은 느낌이 들어 역겹기까지 했다.
역시 많은 언론에서 지적했듯, 된장녀 논란은 인터넷 마초 문화에서 기인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된장녀도 있고, 된장남도 있다고 하지만, 인터넷에서 주로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것은 요즘의 젊은 20대 '여성'이다. 게다가 그 이전의 수많은 '00녀'와 달리 '된장녀'는 뜬구름처럼 실체가 없다. 내가 볼 때 '된장녀'는 새롭게 나타난 여성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인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총집합해 만든 용어로 여성 전체를 매도하는 질 나쁜 말이다.
된장녀와 스타벅스 -- 타인의 취향
처음 된장녀는 스타벅스 논란에서 비롯됐다. 우리나라 스타벅스의 비싼 가격을 지적하는 논의가 갑자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5000원으로 밥 대신 스타벅스 커피를 즐기는 여성들은 뉴요커가 된 듯 착각에 빠지는 '멍청한' 여자가 됐다.
뉴요커라... 누가 지어냈는지 모르지만 정말 뭘 모르시는 말씀이다. 스타벅스에 앉아있다고, 또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신다고 뉴요커 기분을 내는 여성은 아무도 없다. 물론, 스타벅스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시작한 5,6년 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시트콤 <프랜즈>가 서서히 인기몰이를 할 그 때에는 스타벅스에 앉아 있으면 레이첼과 모니카, 조이, 챈들러 등이 모여 앉았던 뉴욕의 센트럴퍼크(Central Perk)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스타벅스는 우리나라에 완벽하게 토착화됐다. 서울 시내 스타벅스가 없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스타벅스는 곳곳에 많고, 또 언제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다. 스타벅스의 비싼 값이라든가 스타벅스로 상징되는 미국의 세계화 등의 문제는 일단 차치하고, 어쨌든 스타벅스는 '대도시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의 하나가 됐다. 뉴요커 기분을 내려면 그 흔한 스타벅스가 아니라 '섹스 앤 더 시티'에서처럼 열쇠를 가지고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방갈로8'이라든가, 테이블이 침대로 이뤄져있는 '베드'같은 아주 최신 바(술집) 정도는 가줘야 하지 않을까.
70년대 젊은이들이 통기타를 즐기고 80년대 젊은이들이 롤러스케이트를 즐겼듯, 요즘 젊은 여성들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고를 수 있고 편안하게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고, 또는 혼자서 보낼 수 있는 커피전문점에 가는 것이다.
유명한 경영전문가 톰 피터스는 그의 책 <Re Imagine 미래를 경영하라>에서 새로운 시대 기업은 '고객 만족' 대신 '고객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식스시그마 같은 품질 관리보다는 디자인, 상상력,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맥심과 스타벅스를 비교한다. 맥심이 단지 커피라는 상품만을 제공했다면, 스타벅스는 단순한 커피 브랜드를 넘어 '스타벅스 라이프스타일'을 제공했다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또 '할리 데이비슨'은 단순한 오토바이를 넘어 '반항적인 라이프스타일'을 뜻한다고 말한다.
즉, 소비의 시대에 그 이미지를 소비하고 자신의 취향에 따라 소비하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들이 뭐라고 비판할 수 없는 것이다. 5000원짜리 따뜻한 밥을 먹든 녹차 프락푸치노를 마시든 그건 개인의 선택이다.
된장녀와 빠순이 -- 오만과 편견
이대생. 한국 사회에서 '이대생'을 바라보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시선이 있다. 여성과 페미니즘을 혐오하는 남성들에게 이대와 이대생은 여성가족부나 페미니즘과 동급으로 취급되면서 거의 비이성적인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이대에 다닐 때 PC통신이나 인터넷에는 이대생은 "명품 좋아하고, 멋만 부리고, 남자의 조건만 보고, 돈 많은 남자만 좇으며, 좋은 데 시집가는 게 목표인 허영심 가득한 머리 빈 여자"라는 글들을 간간이 끊임없이 올라왔다.많은 이대생들과 여성들이 아무리 그에 대해 반박을 하고 상식적인 얘기를 해도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에서 그들은 귀를 닫고 추한 편견에서 헤어나올줄을 몰랐다.
면바지나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다녔던, 멋 부릴 줄도 모르고 부잣집 남자는 보지도 못했던 나는 정말 억울했다. 물론, 그들이 말하는 명품을 좋아하고 돈 많은 남자친구만을 사귀며 허영으로 가득한 그런 이대생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전체 이대생 중에 일부일뿐만 아니라, 사실 그런 여성들은 어딜 가나 있다. 다른 모든 남녀공학에도 똑같은 비율로 있을 것이다. 이 너무나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생각을 그들은 하지 않았다. 이미 추악하게 일그러진 편견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그들에게 상식이나 다양성의 인정, 타인에 대한 존중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이대는 20대 여성들의 집단이라는 이유만으로 젊은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모두 뒤집어쓰고 매도당했다. 한 집단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전체로 매도하는 것은 사실, 인종차별주의자나 나치주의자들의 삐뚤어진 독선과 뭐가 다를까.
예전에 등장했던 용어 '빠순이' 역시 지금의 된장녀 논란과 놀랍도록 흡사하다. '빠순이'는 연예인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소녀팬들을 지칭하는 말로, 역시 이들에 대한 비하와 조롱의 뜻이 담겨 있다.
대중문화에 저급한 것과 고급한 것을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린 소녀팬들이 댄스가수에 열광하면 '빠순이'가 되고, 남자가 좋아하면 '마니아'로 '승격'되는 것이다. 물론 여성팬들, 특히 여중고생의 특성상 그들의 팬문화는 요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이라면 그 시절 한번쯤은 겪는 현상에 대해 인터넷 마초들은 이해심을 갖기보다는 증오하고 멸시하기 바빴다.
또 된장녀의 특징 중 '싸이월드에 패밀리 레스토랑 등 음식점에서 찍은 사진을 올린다'라는 것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디카로 모든 생활을 담아내고 있는 요즘 음식을 찍어올리는 남자들도 많다. 여기서도 똑같이, 여성이 음식 사진을 올리면 '허영'이나 '쓸데없는 짓'이 되지만, 남성이 올리면 '맛을 즐길줄 아는 미식가'가 된다.
그래, 명품 가방이나 의류 좋아하는 여자들 많다. 그럼 남자들은? 사지는 못하지만 외제차 좋아하는 남자들 많이 봤다. 왜 어느 것은 허영, 또 어느 것은 고급취향이 되는 것일까.
우리 사회는 여러 면에서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관대하다. 똑같은 잘못을 해도 남자라면 그것은 그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지만("그 사람은 못났다"라는 식으로), 여성이 잘못한다면 여성 전체의 무능으로 매도된다. ("역시 여자라 안 돼"같은...)
게임에 중독되서 아이템을 사고 팔고, 또 불법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들이다. 이들이 사회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이 더 클텐데 왜 이들을 지칭하는 "도박남"같은 말은 없는가. 그들은 '남성'이라기 보다는 그냥 중립적인 '사람'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분명, 이런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여성이었다면 그들은 "도박녀"로 더욱 큰 비난의 대상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결국, 이대생과 빠순이와 된장녀가 비난받는 것은 이들이 집단으로 욕하기 쉬운 '여성'이라는 것이다. 이번 된장녀 논란 역시 여성을 동등한 이 사회의 파트너로 보는 대신 자신들보다 급이 낮은 존재, 나아가 적으로 보는 일부 남성들의 그릇된 오만과 편견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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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다가 ^^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 제 생각에는 여성이기 때문에 타겟이 되었다는 것은 어느정도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론은 하나의 산업이고 그들은 항상 이슈 거리를 찾아다닙니다. 그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생존 방법이니깐요... 된장녀도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스쳐가는 이슈 중에 하나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화제 꺼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것입니다.
2006/08/25 09:47
PS) 과도한 분노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글 올려놓고 하루만에 와보니 댓글이 많이 달려있네요.
2006/08/26 14:21
일단 건강 걱정해주신거 고맙습니다..^^;
네, 물론 된장녀도 스쳐가는 이슈 중 하나겠지요. 하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 화제가 됐고 논란이 된건 맞다고 봅니다. 또 다른 이슈가 생긴다 하더라도 앞으로도 OO녀들이 태반일 것이라고 보구요. 왜 그 많은 OO녀만 온오프라인에 넘치는 것일까요. 똑같은 행동을 해도 여자가 하면 더욱 부정적으로 튀게 되고, 또 언론은 그걸 더욱 확산시키죠. 지금 '된장녀'는 일순간의 유행이라기보다는 거의 하나의 용어처럼 되가는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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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뭉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녀'는 일반적으로 찌질이나 악플러 같은 말에서 남성이 연상되는 거랑 비슷한 이치에요.
2006/08/25 10:14
남성중심사고는 맞네요. -
Wolverine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된장녀라는 말은 DC에서 나와서 퍼진 것이고 나중에 언론을 탔으니 그게 여성을 타겟으로 삼았다는 건 맞습니다. DC힛갤에 있는 무안단물 패러디에도 된장녀의 이름이 김박XX로 되어 있더군요. 페미니스트도 된장녀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요는... 맘에 안 드는 녀성들은 다 된장녀라는 거죠. 그 말이 원래 어디서 나왔건 간에 이제 그렇게 쓰는 것 같습니다.
2006/08/25 13:31
전에 다니던 직장에 이대 출신 친구들이 몇 명 있었는데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가끔 여성부에는 이대 출신밖에 없다고 떠벌이는 사람들 보면 웃겨 죽겠어요. -
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된장녀는 스타벅스에 돈쓰는 여자 전부를 말하는게 아니라
2006/08/25 12:45
남자돈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그래서 생긴 여윳돈으로 스타벅스를 애용하는 여자들을 말하는겁니다
이슈를 언급할때는 이슈의 시발점부터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스타벅스에 앉아계시다고 글쓰신 분이 된장녀라고 말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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