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희의 CoolHot



아침저녁으로 부는 서늘한 바람과 함께 가을이 살금살금 다가왔다. 이래저래 뜨거웠던 가슴이 차분해지면서 따뜻한 로맨틱 영화가 생각나는 계절이다. 여름의 끝자락, 지적이고 경쾌한 로맨틱코미디 두 편이 나란히 개봉한다. 미국의 ‘스마트 피플’과 프랑스의 ‘발렛’은 선남선녀의 발랄한 사랑 이야기라는 할리우드의 전형적인 로맨틱코미디 공식에서 비켜나 있다. 무엇보다 두 영화의 남자주인공은 중년의 ‘꼰대’ 또는 볼품없는 외모의 주차요원이다. 영미와 프랑스라는 각기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두 영화는 솜사탕처럼 달콤하지 않지만 담백한 커피향 같다.

 지적인 로맨틱코미디 ‘스마트 피플’ ★★★★

‘스마트 피플’은 두 남녀의 러브 스토리라기보다는 자신만 잘난 줄 알았던 똑똑한 사람들이 연인 관계, 가족 관계에서 서로를 이해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는 과정을 담았다. 억지스러운 스토리보다 일상적이고 잔잔한 사건 속에 주인공들이 겪는 미묘한 심리 변화를 드러낸 점이 돋보인다. 주인공들의 지적이고 시니컬한 대사와 유머, 영문학적 대사 등도 영화의 매력이다.

배경 역시 그동안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대표 무대인 대도시 뉴욕이 아니라 대학과 마을이 어우러져 있는 피츠버그다. 할리우드의 연기파 배우 데니스 퀘이드가 융통성 없는 교수로 분했으며, ‘섹스 앤 더 시티’의 패셔니스타 사라 제시카 파커가 화려함을 걷어내고 지적인 의사로 변신했다. 또 ‘주노’에서 당돌한 십대소녀를 연기해 호평을 받았던 엘렌 페이지의 시니컬한 매력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스마트 피플’ 속 인물들은 제목대로 똑똑한 사람들이다. 주인공 로렌스(데니스 퀘이드)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중년의 교수다. 그는 1년을 가르쳤어도 학생들 이름을 외우지 못하며 오로지 학문과 자신밖에 모르는 인물이다. 어느날 로렌스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했다가 이제는 의사가 된 10여년 전 자신의 제자 자넷(사라 제시카 파커)을 만난다. 아내가 죽은 지 17년 만에 그는 처음으로 옛 제자와 데이트를 하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나간다.

로렌스의 ‘우수한’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 바네사(엘렌 페이지)는 멘사 회원이기도 한 우등생 소녀이지만, 친구 하나 없는 유아독존형이다. 어느날 철없는 삼촌 척(토머스 헤이든 처치)이 한 집에 살게 되면서 혼자만의 세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너무나도 잘나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동정했던 그들이 사실은 고집 센 멍청이이며 외톨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빈틈없고 견고한 벽에 갇혀 있던 똑똑한 사람들이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사랑하는 법을 깨달아간다.

 경쾌한 프랑스산 로맨틱코미디 ‘발렛’ ★★

제목인 ‘발렛’은 레스토랑 등에서 차를 대신 주차해주는 서비스를 이르는 말로 주인공의 직업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로맨틱코미디의 고전인 ‘귀여운 여인’ 또는 ‘노팅힐’의 남자 버전 같은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할리우드 공식처럼 정형화된 설정으로 치닫지는 않는다. 그래서 조금 싱겁기는 해도 가볍고 경쾌한 프랑스 코미디를 맛보기엔 제격이다. 올해 개봉했던 또 다른 프랑스산 로맨틱코미디 ‘프라이스리스’에 출연했던 게드 엘마레가 또다시 주연을 맡았다. 조각 같은 외모가 아닌 어벙한 얼굴로도 로맨틱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레스토랑 파킹맨으로 일하고 있는 피뇽은 직업도 외모도 볼품없지만 첫사랑인 만을 사랑하는 마음씨 착한 순정파 남자다. 하지만 청혼을 거절당해 상심해 있던 그는 어느날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최고의 슈퍼모델 엘레나와 커플인 행세를 해달라는 것. 백만장자인 르바셰르는 엘레나와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우연히 파파라치 사진에 함께 찍한 피뇽을 그녀의 연인으로 둔갑시킨 것이다. 이 같은 계획에 따라 졸지에 슈퍼모델의 애인이 된 피뇽은 바깥에서 연인처럼 행세하고 한 집에 동거까지 하게 된다.

영화는 불륜 커플인 백만장자와 슈퍼모델, 그리고 가난한 피뇽과 그의 첫사랑인 에밀리, 그리고 톱스타와 남자 신데렐라라는 가짜 커플인 피뇽과 엘레나 등 삼각의 커플관계를 펼쳐놓고, 과연 어떤 식으로 끝맺게 될지 궁금하게 만든다. 재미있는 설정에 비해 후반부가 약한 게 흠이지만, 아기자기한 파리의 풍경과 캐릭터를 보는 재미가 있다. 또 샤넬의 수석 디자이너인 칼 라커펠트가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진짜 관계를 숨기기 위해 가짜 커플 행세한다는 설정이 할리우드의 입맛에도 든 모양이다.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 ‘날 미치게 하는 남자’ 등 독특한 로맨틱코미디물을 만든 패럴리 형제가 이 영화를 리메이크할 예정이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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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8/2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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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담배 피우는 남자'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다... -_-;
그 남자는 영원히 'cigarette smoking guy"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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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인기 미드인 ‘엑스파일(X 파일)’은 멀더와 스컬리라는 FBI 요원이 외계인 음모론, UFO 등 미스터리한 사건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90년대 큰 인기를 끌었다. 멀더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는 직관의 수사관이며, 스컬리는 의사 출신답게 과학을 신봉하는 이성주의자다. 서로 정반대의 신념을 가진 두 사람은 때론 갈등하지만 서로 보완하고 또 서로를 견제해주며 사건의 실체에 접근해갔다.

두 사람의 이 같은 ‘갈등과 협동’의 팀워크는 시리즈가 끝난 뒤 6년만에 선보인 이번 영화에서도 계속된다. 오랜만에 보는 폭스 멀더(데이비드 듀코브니)와 데이나 스컬리(질리언 앤더슨)의 모습은 분명 반갑다. 하지만 TV시리즈에서 풀리지 않았던 엑스파일의 정체, 멀더가 그렇게 쫓던 진실, FBI의 음모란 무엇인지, 심지어 ‘담배 피우는 남자’의 실제 이름이라도 알고 싶었던 팬들이라면 이번 영화 버전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영화는 시간상으론 TV시리즈 그 이후가 배경이지만, 내용은 예전 TV 시리즈의 재탕에 머문다.

TV 시리즈 시즌9의 마지막 에피소드 이후 몇년이 흘렀다. 멀더와 스컬리는 이제 FBI를 그만두고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멀더는 홀로 은둔자로, 스컬리는 의사로서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 어느날 FBI가 이들에게 도움을 청해온다. 한 마을에서 여성의 납치와 살해가 잇따라 벌어지는 가운데 염력을 가진 한 남자가 이 사건의 잔상을 보고 있는 것. 그는 잔상을 통해 납치 과정을 말해주기도 하고 시체가 묻혀 있는 곳을 정확히 지목하기도 한다. 스컬리는 그를 범인으로 의심하지만, 멀더는 그의 초자연적 능력을 믿으며 그를 사건 해결에 적극 활용하고자 한다.

영화의 부제는 ‘나는 믿고 싶다’이다. 이는 TV시리즈에서 멀더의 사무실 벽에 걸린 UFO 포스터 속 문구이기도 하다. TV시리즈 ‘엑스파일’이 단편적 미스터리 사건과 함께 시리즈를 관통하는 큰 줄기로 외계인의 존재 여부와 음모설 등을 다룬 점에 비춰보면, 단순히 엽기적 범죄 사건만 보여준 이번 영화판의 ‘나는 믿고 싶다’는 공허하게 들린다.

그나마 이번 영화판이 색다른 건 TV 시리즈 팬들이 고대했던 멀더와 스컬리의 로맨틱 관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는 점이다.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거나 한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 등은 팬서비스 장면으로 보인다.

또 오랜만에 FBI 본부를 찾은 멀더와 스컬리가 부시 대통령 사진 앞에 멈추자 ‘엑스파일’의 미스터리한 음악이 잠시 흐르는 장면은 의외의 유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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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8/14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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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고철 로봇이
쓰레기더미 지구에서 건져올린 작은 희망...


‘토이 스토리’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라따뚜이’에 이어 이번엔 어떤 이야기일까?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디즈니 픽사의 상상력이 우주와 로봇에까지 미쳤다. 그냥 로봇이 아니라 황폐화된 지구에 홀로 남은 고철 로봇이다. 7일 개봉한 애니메이션 ‘월·E’는 ‘만약 인류가 지구를 떠나며 최후에 남은 로봇을 끄는 걸 깜빡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

장난감, 몬스터, 바다 속 물고기, 요리하는 쥐가 앙증맞게 헤집고 다녔던 픽사의 전작들에 비하면 ‘월·E’는 서정적이고 철학적이다. 픽사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교훈적이면서 인문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겁거나 심오한 메시지를 다뤘다는 뜻이 아니라 환경문제, 미래의 디스토피아 등을 넌지시 드러냈을 뿐이다. 물론 아기자기한 로맨스와 경쾌한 모험도 들어 있다. 영화는 수줍은 첫사랑을 담아냈고, 또 암울한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희망을 이야기한다.

월·E는 지구에 홀로 남은 최후의 로봇이다. 대형마트 이름을 떠올리게 하는 상업적 이름답게 이 로봇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대량생산된 로봇 중 하나일 뿐이다. 인간이 모두 떠난 지구에서 월·E는 프로그래밍이 된 대로 폐기물을 수거 처리하는 작업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 월·E에게도 삶의 낙이 있다면, 라이터·포크 등 폐기물 중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 을 집에 수집해 놓는 것이다. 또 ‘헬로 돌리’ 비디오를 보며 춤추는 남녀를 동경하고 두 남녀가 손잡는 행위를 보며 자신 또한 누군가와 손잡기를 꿈꾼다.

이렇게 오로지 혼자, 매일 반복적인 삶을 살던 월·E 앞에 어느 날 탐사로봇 이브가 나타난다. 월·E가 카세트 라디오 같은 고철 로봇이라면 이브는 흰색의 날씬한 몸매에 첨단기능을 보유한 아이팟 같은 로봇이다. 월·E는 모처럼의 타인이자 여성적 느낌의 로봇인 이브에게 반한다. 하지만 이브는 지구에서 초록식물을 발견하는 임무를 마치자마자 우주로 떠난다. 이제 더 이상 혼자이기 싫은 월·E는 자신의 임무를 내버린 채 이브를 뒤쫓아 우주로 떠난다. 이는 기계가 생명력을 갖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월·E나 이브는 여타 애니메이션 속 장난감이나 동물들처럼 과장스럽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가 아니다. 기계음으로 한두 마디 정도만 할 뿐이다. 따라서 로봇만이 머무는 고요한 지구의 모습을 담은 초반 30분은 존재의 쓸쓸함과 고독, 그리고 따뜻함과 장엄함을 느낄 수 있는 한 편의 시와 같다. 또 철저히 기계에 불과했던 로봇들이 오밀조밀한 기계 손을 부끄러운 듯이 서로에게 내미는 장면은 이질적이지만 그래서 더 온기가 느껴지는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월·E’ 속 인류의 미래는 평온하지만 암울하다. 지구는 쓰레기더미가 많아져 생명체가 살 수 없게 된다. 거대 다국적기업 바이앤라지(BUY n LARGE)사는 호화 우주선 액시엄을 만들어 인간을 태운다. 지구에 식물이 살고 이를 탐사로봇이 발견하게 될 때까지 인간은 이 우주선에서 700년을 살았다. 우주선 속 인류 사회는 유토피아를 넘어 디스토피아다. 인간은 부유하는 의자에만 앉아 있고 눈앞에 떠 있는 화면을 보며 이야기하고 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산다. 인간은 겉으로는 로봇을 거느리고 살지만 사실은 로봇과 컴퓨터가 구축해 놓은 우주선 안에서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는 존재로 전락했다. 제 힘으로 걸어본 적 없는 인간의 몸은 풍선처럼 부풀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삶이 프로그래밍화돼 있고,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은 아널드 헉슬리의 끔찍한 ‘멋진 신세계’를 떠오르게 한다.

이처럼 영화는 지구, 환경, 인간성, 기계에 지배되는 삶 등의 화두를 꺼내 놓은 뒤 결국엔 인간과 기계가 지구에서 공존하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월·E는 이브를 향한 순정을 바탕으로 결국 인간을 구원하게 된다.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을 ‘고향’인 지구로 이끌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만드는 건 이 작은 로봇이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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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8/07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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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PIXAR의 유쾌한(?) 묵시록... 월·E(Wall·E)

    Tracked from 라디오키즈@LifeLog  삭제

    영화 모임까지 준비하면서 기다려왔던 월·E(Wall·E)를 지난 주말 드디어 극장에서 만나고 왔다. 다크 나이트와 놈놈놈 등 흥행작 사이에 끼여 제대로 상영관도 잡지 못한 그를 만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2008/08/05 - 널 만나는게 왜 이리 힘든 거니...ㅡㅜ 월-E야~~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미국보다 한참이나 늦게 개봉한 월·E와의 만남은 긴 기다림을 보상해주기라도 한 것처럼 감격 그 자체였다. 정말이지 너무나 사랑스런 캐..

    2008/08/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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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라3'를 보고 할리우드는 다양하는 생각이 든다. '다크 나이트'처럼 경이롭고 소름끼치는 묵직한 블록버스터를 만드는 반면, 같은 시기에 많은 돈을 들여 이같은 유치한 영화도 만들어내는 곳이다. '다크 나이트'가 깊고 풍부한 명품 다크초콜릿이라면, '미이라3'는 애들이나 먹는 싸구려 사탕맛 정도될까?

'미이라3'는 올 여름 할리우드의 극과 극을 체험하게 해주는 영화가 될듯하다. 미이라 1,2 팬으로서 정 궁금하면 어쩔 수 없지만, 돈주고 보기에는 정말 아까운 영화다. 게다가 1~2편 히로인인 여자가 봐도 예쁜 레이첼 와이즈 대신 라는 마리아 벨로라는 배우로 대체됐는데, 주인공 브랜든 프레이저보다 많이 늙은데다 매력도 훨씬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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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을 잠들어 있던 미라와의 스펙터클한 대결, ‘미이라’ 시리즈 3편이 올여름 찾아왔다. 1999년 ‘미이라’, 2001년 ‘미이라 2’에 이어 7년 만에 맞는 속편이다. 흥행에 성공을 거둔 전편의 명성을 잇고자 하지만 결과는 안타깝다. 진부한 스토리와 진부한 유머, 진부한 설정이 더해져 액션 어드벤처물의 진부한 공식을 합쳐놓은 교본처럼 돼버렸다. 올여름 다채로운 슈퍼히어로 영화로 인해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관객은 물론 전작의 어드벤처 오락물을 좋아했던 팬들도 실망할 듯하다.

전편들의 배경이 이집트의 미라였다면, 3편은 올해 할리우드의 주요 테마인 중국으로 무대를 옮겼다. 여기서 수천년간 잠들어 있다 부활한 미라는 다름 아닌 진시황제다. 만리장성 축조라든가 불로장생의 꿈, 병마용 등을 보면 진시황제가 분명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황제 한’이라는 이름과 함께 악의 화신으로 설정됐다.

1, 2편을 통해 온갖 모험을 즐겼던 릭(브랜든 프레이저)과 에블린(마리아 벨로) 부부는 런던에 정착한다. 평온한 삶이 무료해진 어느날 이들은 ‘중국의 보석’을 중국에 되돌려주라는 임무를 받는다. 어느덧 청년으로 성장한 아들 알렉스는 부모 몰래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에서 유물 발굴에 빠져 있다. 저주에 걸린 황제를 부활시키려는 세력에 맞서 릭, 에블린, 알렉스, 그리고 에블린의 오빠 조너선은 다시 모여 미라들과 싸움을 벌인다.

영화는 시리즈 중 역대 최대 제작비가 든 만큼 액션 어드벤처물로서의 볼거리는 여러가지 펼쳐놓는다. 1940년대 화려한 상하이 밤거리에서의 자동차 추격전, 히말라야 산맥에서의 눈사태, 흙으로 만들어진 병마용과 해골 군대의 대전투 등이 내세우는 장면들이지만 긴장감과 박진감은 떨어진다. 게다가 순수한 사랑,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과 화해 등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온갖 진부한 소재거리를 끼워넣었다. 문제는 이 상투적 레퍼토리를 아무런 진정성 없이 기계적으로 읊어댄다는 것이다.

중국이 배경인 만큼 중국의 스타 리롄제(이연걸)와 량쯔충(양자경)의 모습을 보는 것은 반갑지만, 역시 상투적인 들러리 역에 그쳐 안타깝다. 1, 2편을 만든 스테판 소머즈 감독 대신 ‘트리플 X’ ‘분노의 질주’를 만든 롭 코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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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7/3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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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트맨 비긴즈’의 후속작 ‘다크 나이트’는 이전의 슈퍼히어로 영화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배트맨의 묵직하고 클래식한 검은색 수트는 화려한 원색 수트의 다른 영웅들과 다르다는 것을 상징하는 듯하다. 원작은 코믹북이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런 류의 영화 공식을 모두 깨고 어둡고 복합적인 주제를 담은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그 결과 ‘다크 나이트’는 슈퍼히어로 액션영화의 옷을 입은 범죄드라마 또는 스릴러물로 완성됐다. 그리고 그 정점엔 ‘슈퍼히어로’ 배트맨에 맞서는 ‘슈퍼빌리언’ 조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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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는 배트맨에게 “너는 나를 완성시켜”라고 말한다. 조커를 불멸의 악당으로 거듭나게 한 것이 배트맨이듯, 영화 ‘다크 나이트’ 역시 조커가 있기 때문에 명품 스릴러로 완성될 수 있었다. 조커는 기존의 악당 캐릭터로 분류되기 힘들다. 하얗게 분칠한 얼굴에 찢어진 입과 빨간 립스틱, 낄낄거리는 목소리로 “왜 그렇게 심각해?”라고 묻는 그는 괴이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커는 여느 악당들처럼 탐욕도 복수심도 대의명분도 없는 인물이다. 또 결정적인 순간에 방심하거나 허점을 드러내는 나약한 악당이 아니라 배트맨을 뛰어넘을 정도로 치밀하고 지능적이다.

팀 버튼 감독의 1989년 ‘배트맨’에서 잭 니컬슨이 맡은 조커는 그로테스크하지만 유머러스한 악당이었으며, 그의 본래 이름은 물론 조커가 된 사연이 존재했다. 하지만 ‘다크 나이트’속 조커는 실제 이름도 정체도 드러나지 않는다. 인간이되 인간적 면모가 제거된 그는 순수 악 그 자체다. 그는 마치 신화 속 ‘파괴의 신’처럼 사람들의 윤리성을 시험하기도 하고, 사회를 무정부와 혼돈의 상태로 이끈다. 조커는 또 합리적인 도덕률을 지닌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를 시험하면서 고도의 심리전으로 ‘영웅’을 타락시키고자 한다. 이를 통해 조커는 선과 악은 언제나 뒤집을 수 있음을 증명하려고 한다. 배트맨과 조커, 또는 하비 덴트와 조커 등 영화 속 선과 악, 악당과 영웅의 구분은 확실하지만, 그 경계는 줄 위를 걷는 것처럼 아슬아슬하다. 관객은 슈퍼히어로가 악당을 무찌르는 데서 오는 통쾌함 대신 혼돈, 절망, 불안을 느낀다.

사실 배트맨은 그 어떤 슈퍼히어로보다 현실에 발을 붙인 캐릭터다. 그는 초능력 대신 딱딱한 수트를 입고 맨몸으로 싸울 뿐이다. 스파이더맨의 속도와 헐크의 괴력, 아이언맨의 미사일이 있었다면, 이 같은 만화적 설정에서 이들 슈퍼히어로들은 겨우 인간에 불과한 조커를 간단하게 해치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커는 이 같은 물리력 힘이 아니라 머리와 도덕으로 제압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현실과 고딕풍이 혼재된 암울한 고담시는 몽환적이고 세기말적 분위기를 내는 동시에 9.11 이후 테러 공포에 떠는 현대의 세계를 반영한다.

이 같은 조커를 완벽하게 연기한 이는 지난 1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뜬 배우 히스 레저다. 과연 이 조커가 ‘브로크백 마운틴’의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 카우보이와 동일 인물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그의 연기는 파격적이다. 조커 역을 연기하기 위해 히스 레저는 한달간 호텔에서 혼자 생활하며, 캐릭터의 몸짓과 목소리, 심리를 연구했다. 그는 일기를 쓰며 조커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노력 끝에 그는 잭 니컬슨과 다른 그만의 조커를 완성할 수 있었다. 영화가 끝난 뒤 ‘히스 레저를 추모하며’라는 엔딩 크레딧을 보면 이 배우의 요절이 더욱 아쉬워진다. 영화는 앞서 개봉한 미국 역대 슈퍼히어로 영화 중 최고라는 찬사를 받으며 박스오피스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히스 레저의 죽음과 그의 조커 연기 때문에 조커에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다른 캐릭터들 역시 묵직한 무게감을 자랑한다. 두 번째로 배트맨 연기를 맡은 크리스천 베일은 젠틀한 브루스 웨인과 고독한 영웅 배트맨 두 가지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준다. 또 고든 역의 게리 올드먼, 선과 악의 경계를 넘는 하비 덴트 역의 아론 에크하트, 그리고 모건 프리먼, 메기 질렌할 등이 제 역할을 다 한다. 8월 6일 국내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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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7/2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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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은 먼곳에'에 관해 이전에 썼던 글에 일부 오해가 있는 듯해 몇가지 변명(?)과 영화에 관해 더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습니다.

<님은 먼곳에, 여전히 불만족스런 여성캐릭터>란 글에서 저는 여자 시각으로 봤을때 순이 캐릭터의 완성도면에서 일부 불만인 점을 썼고, 일부 독자들께서 제 글을 비판했습니다. 이분들이 비난한 것처럼 제가 '여장부'나 '여전사' 순이, 또는 70년대 순이에게 똑부러지고 당찬 21세기 여성같은 순이를 바란게 아닙니다.

순이가 왜 무심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가고, 오매불망 남편만을 찾는가라는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이유와 시각이 있지만, 저는 그게 모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오기 또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에서도 썼듯, 시댁에서도 이쁨받지 못하고 게다가 친정까지 '출가외인'이라며 순이를 쫓아냅니다. -_-;;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친정에게서도 버림받은 순이는 베트남행을 결심합니다. 아마도 사랑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건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순이는 용감했습니다. 여전히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대신 남편을 찾겠다는 끈기를 보여줍니다.
 
또 순이가 전쟁터 가수 경험을 통해 점차 강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대 위에서 점점 자시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앞서 제가 지적한 건 그 직접적 계기가 섹슈얼리티 때문이라는 겁니다. 순이는 가수로서 노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성, 섹시한 몸과 몸짓을 통해 환호받는 것으로 영화에 나옵니다. 그 시절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에서 그러한 묘사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는 오로지 그 측면만 부각돼 나옵니다. 순이가 노래를 통해 전쟁에 지친 영혼들을 보듬어 주는 장면은 헬리곱터 장면만이 유일합니다.

뒤늦게 '씨네21'의 이준익 감독 인터뷰를 봤더니, 이준익 감독은 "이 영화의 남자들은 순이를 한번도 성적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군 중령과의 관계도 그렇다. 모든건 순이의 선택이다... 오히려 순이가 '나는 한국으로 못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의 성적 도구화라는 클리셰를 역전시킨 것인데 그걸 못 읽어내고 되레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순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서, 남자들이 순이를 강제로 성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자의 성적 도구가 아니라고 하는 게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즉, 여자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몸을 팔면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된 게 아니다??? 도대체 어떤 클리셰를 역전시켰다는 것입니까...??

또 이준익 감독이나 많은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는 '남자들을 용서하는 순이'라는 시각, 한마디로 순이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모성같은 사랑을 가졌다는 것인데... 갓 스무살을 넘긴 젊은여자(게다가 애도 안 낳아본 어린여자)에게까지 '위대한 모성'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건 너무 진부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남자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이며 최고의 찬사는 '모성'밖에 없는 것인지...

차라리 70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 몸과 마음이 메여있던 순이가, 마침 갈 곳이 없게 돼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자기를 억압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털어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또 가수로서 또 스무살쯤의 여자로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미국식으로 보는것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말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영화 속 베트남 전쟁은 우리의 시각으로 반성하기보다는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요즘 전쟁영화의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시각을 보일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님은 먼곳에'를 다소 지루하고 진부하다고 느꼈지만 꽤 감동적으로 봤습니다. 그건 순전히 마지막 장면 때문입니다. 순이가 상길을 먼발치에서 봤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저 자식 한대 확 패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_-; 그런데 예상 반, 예상외 반으로 순이는 정말 그러더군요. 그 순종적이고 순애보적으로 보였던 순이가 전쟁에 지친 남편을 만나자마자 한 행동은 따뜻하게 보듬어주는게 아니라 후려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순이의 행동은 속좁은 제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미워서 한대 패주고 싶은)보다 훨씬 복합적인 감정이었겠지요. 비난, 질책, 원망, 사랑, 포용 등이 모두 담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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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7/27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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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님은 먼곳에 : 괴리감, 이질감, 불쾌함의 3종세트

    Tracked from 『un petit voyage : season 2』  삭제

    괴리감에 이질감마저 느껴진다.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멋진 마지막 엔딩?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마지막 장면은 좋았다. 그런데 웃긴 건 뭔 줄 알아요? 멋지다 못해 환상적인 감동을 응축해놓은 엔딩, 그 한 씬으로 이 영화의 모든 의문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알아 먹어야만 진정 영화를 즐길 줄 안다는 식으로 공공연하게 떠들고들 있어서 이 영화가 대체 뭐라고 대놓고 불쾌하다는 심사를 드러내기조차 곤란하단 말이냐고. 좋았다는 사람들의 리뷰를 몇 개..

    2008/07/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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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딸기뿡이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준익표 여성성 고찰의 시선이 저는 참 못마땅하더라고요. 물론 영화가 저질에 쓰레기 같다고 느껴본 적 없습니다. 다만 감독의 그런 시선때문에 불쾌했고.. 정작 본인도 인터뷰 글을 보면 모순적인 발언을 하고 있고요. 아무튼 '여성성' 관련해 나오면.... 참... 악플이 난무하네요! ^^ + 저는 다시 본다 해도 이 영화가 그린, 감독이 나타내고자 하는 여성성의 위대함에 대해 쉽게 납득하기는 힘들겠더라고요.

    2008/07/27 14:45
    • BlogIcon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님 의견에 저도 대부분 공감합니다. 특히, 저도 감독이 영화를 설명하는 부분 '여성의 눈으로 본 남성성 또는 전쟁의 고찰'이라는 부분도 정말 이해하기 힘들구요. 이런 부분을 지적하면 '꼴통 페미'로 비난받고요...-_-;;
      님도 지적한 여성의 위대함, 모성... 이런 부분은 저도 정말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2008/07/27 15:36
  2. milk(댓글 속에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0년대라는 아직은 여성의 입지가 열악했던 시대적 상황, 전쟁터라는 공간적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순이의 행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합니다. 그러나 한 여성이 자존감을 획득하는 과정이 자신의 성적 매력을 발산하고, 그것을 인정받는 과정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여전히 씁쓸합니다.
    영화의 큰 줄기와는 별개로 위문공연을 하기 위해 정만이 순이의 치마를 걷어내는 장면, 순이가 공연 중 군인들에게 속옷을 던지는 장면, 미군 중령과 모종의 거래를 하는 장면을 보며 식겁했습니다. 그 장면들을 보며 '역시 전쟁은 노노~세상이 미쳐돌아가~' 이런 생각만 가득...-_-;;;
    세차게 상길의 뺨을 후려친 순이가 탁탁 손을 털고 상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에필로그를 상상하는 것은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겠지요? 그러나...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네요. 7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아직은 인생경험이 부족하기에 그런가 봅니다.

    2008/07/28 19:43
    • BlogIcon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저랑 같은 의견이시라 반갑네요 ^^
      저도 그런 점이 보는내내 조금 불편했습니다.
      상길에게 이별을 고하는 에필로그라.. 그 이후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괜찮은 엔딩이네요^^

      2008/07/29 16:20



'마지막 장면' 때문에라도 볼 만하다.

이준익 감독 영화를 보면 여성이 주변부에 머무는 느낌, 여성이 소외되는 느낌이 들곤 했다. 이건 주조연 문제가 아니다. 남자들의 '대의(大義)'에 끼지 못하고 오히려 방해자인 느낌... 그런데 <님은 먼곳에>는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로, 강인한 여성캐릭터를 보여준다고 해서 기대를 했다. 하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님은 먼곳에’는 ‘황산벌’ ‘왕의 남자’ ‘라디오 스타’ 등 주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뤄왔던 이준익 감독이 처음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수애가 단독 주연으로 나선 영화 ‘님은 먼곳에’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남편을 찾기 위해 전쟁터에 뛰어든 어느 한 여인의 고된 여정을 그렸다.

 여성의 관점으로 본 전쟁 이야기 또는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기에는 여전히 남성중심적 시각이 드러난다. 평범하고 순종적이었던 순이는 위문공연단 보컬이 되며 무대에 설수록 점차 자신감도 생기고 대담해진다. 또 밴드 내에서 입지도 커진다. 하지만 순이가 그런 힘을 갖게 된 근본 원인은 자신의 섹슈얼리티 덕분이다. 몇 가지 고난을 겪으면서 그녀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된 것도 있지만, 순이가 “남편 있는 곳으로 가자”고 강력하게 말할 수 있게 된 배경은 무엇보다 그녀의 섹시함, 즉 관객(남자)을 끌어들이는 능력 때문이다. 순이는 보컬로서는 ‘드림걸스’의 제니퍼 허드슨 부류와는 다르다. 순이는 군인들 앞에서 다리를 드러내고 몸을 흔들면서 노래를 했기 때문에 환호를 받았다. 그가 남편을 찾게 되는 결정적 순간 역시 그녀의 섹슈얼리티를 적절히 이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런 점에서 순이를 순수하게 ‘강인한 여성 캐릭터’라고 보기는 힘들다.

 1971년 순박한 시골 아낙네 순이는 왜 베트남으로 가게 됐을까? 그녀의 남편은 결혼하자마자 군대로 도망가더니 진짜 애인으로부터 이별 선고를 받자 도망치듯 베트남으로 간다. 사랑도 잃고 허울뿐인 아내만 있었던 그에겐 차라리 월남전으로 가는 게 해방이었나 보다. 대를 이을 아이만 필요했던 시어머니는 순이를 탓한다. 시댁에서 쫓겨난 순이는 친정에서도 외면받는다. 한번 출가한 여자는 죽어도 시댁에서 죽어야 한단다. 순이가 무심한 남편을 찾아 생사의 현장으로 멀리 떠나게 된 이유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소 지루하고 고전적으로 느껴졌던 이야기는 마지막 장면에 가서야 클라이맥스를 맞는다. 계속 답답했던 순이가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행동은 예측 가능하면서도 예측 불가능하며,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자 자신의 승리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몰랐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몰랐던 순이는 전쟁을 거치는 동안 변해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억눌려왔던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감정을 격렬히 드러낸다. 도대체 왜 그런 남편을 저리도 찾아 헤매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문제가 마지막 장면에서야 풀리게 된다.

수애는 수수하고 전통적인 여인에서 점차 대담해지고 강해지는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무대 위 가수로서의 모습은 전쟁에 지친 군인들에겐 먹힐지 몰라도, 스크린 너머 관객들까지 휘어잡기에는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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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다녀온 사이에 댓글이 많아져서 해명(?)과 더 하고 싶은 얘기를 덧붙입니다.

일부 독자들께서 제 글을 비난하는 것처럼, 제가 '여장부'나 '여전사' 순이, 또는 70년대 순이에게 똑부러지고 당찬 21세기 여성같은 순이를 바란게 아닙니다.

순이가 왜 무심한 남편을 찾아 베트남으로 가고, 오매불망 남편만을 찾는가라는 문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여러 이유와 시각이 있지만, 저는 그게 모성이나 사랑이 아니라 그녀의 오기 또는 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원글에서도 썼듯, 시댁에서도 이쁨받지 못하고 게다가 친정까지 '출가외인'이라며 순이를 쫓아냅니다. -_-;; 남편에게도 버림받고 친정에게서도 버림받은 순이는 베트남행을 결심합니다. 아마도 사랑이나 용기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건 그녀의 남편과 마찬가지로 한국을 떠나기 위한 일종의 도피일지도 모릅니다.

어쨌든, 순이는 용감했습니다. 여전히 잘 이해는 안 가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포기하거나 도망가는 대신 남편을 찾겠다는 끈기를 보여줍니다.
 
또 순이가 전쟁터 가수 경험을 통해 점차 강인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무대 위에서 점점 자시감도 생깁니다. 하지만 여기서 제가 지적한 건 그 직접적 계기가 섹슈얼리티 때문이라는 겁니다. 순이는 가수로서 노래를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여성성, 섹시한 몸과 몸짓을 통해 환호받는 것으로 영화에 나옵니다. 그 시절 남자들만 있는 전쟁터에서 그러한 묘사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에서는 오로지 그 측면만 부각돼 나옵니다. 순이가 노래를 통해 전쟁에 지친 영혼들을 보듬어 주는 장면은 헬리곱터 장면만이 유일합니다.

뒤늦게 '씨네21'의 이준익 감독 인터뷰를 봤더니, "이 영화의 남자들은 순이를 한번도 성적 도구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다못해 미군 중령과의 관계도 그렇다. 모든건 순이의 선택이다... 오히려 순이가 '나는 한국으로 못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여성의 성적 도구화라는 클리셰를 역전시킨 것인데 그걸 못 읽어내고 되레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순이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해서, 남자들이 순이를 강제로 성적으로 취하지 않았다고 해서, 남자의 성적 도구가 아니라고 하는 게 저는 더 이해가 안 됩니다. 즉, 자신이 자발적으로 몸을 팔면 남자의 성적 도구가 된 게 아니다???

"남편 실종"이라고 딱딱하게 반복했던 미군 중령이 순이와의 하룻밤을 통해 "남편을 찾으라"고 명했습니다. 저는 차라리 순이의 열정과 순이의 노래에 감동해서 마음을 바꿨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다.

또 이준익 감독도 말하는 '남자들을 용서하는 순이'라는 시각, 한마디로 순이가 남녀간의 사랑이 아닌 그보다 더 큰 모성같은 사랑을 가졌다는 것인데... 갓 스무살을 넘긴 젊은여자에게까지 '위대한 모성'이라는 굴레를 덧씌우는 건 너무 진부하게 보입니다. 도대체 남자들이 여성에게 부여하는 긍정적이며 최고의 찬사는 '모성'밖에 없는 것인지...

차라리 70년대 한국 가부장제 사회에 몸과 마음이 메어있던 순이가, 마침 갈 곳이 없게 돼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베트남으로 갔는데 그 곳에서 자기를 억압한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털어버리고, 한 인간으로서 가수로서 또 스무살쯤의 여자로서 자아를 찾는 과정이 되었으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이준익 감독은 또 이 영화가 베트남 전쟁을 미국식으로 보는것에서 벗어나 우리 시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는데, 사실 이 말도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습니다. 영화 속 베트남 전쟁은 우리의 시각으로 반성하기보다는 '전쟁의 비극'을 알리는 보편타당하고 일반적인 시각을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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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V l 2008/07/10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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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스포일러야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당신 스포일러짓 참 잘하는군..
    영화가 부족하든 넘치던...
    영화의 핵심 부분까지 말하면 어쩌라는거야..
    당신한테 이런 이야기 해달라고 시사회 표 준건 아니잖아?

    2008/07/10 20:46
    • BlogIcon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원글 쓴 사람입니다. 딱히 스포일러는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제가 위에서 쓴 내용은 이미 영화 소개에 나오는 일반 줄거리이고, 또 다른 여러 리뷰 기사 등에도 얼마든지 써있는 내용입니다.
      정확히 어느 부분이 스포일러로 느끼셨는지 말씀해주시면,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답변주세요.

      2008/07/10 22:22
  2. 남자중의 한명에 입장에서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주인공을 보았을때 포스가 작다거나 약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강하다 하여 이기고 장악하고 승리하여 하는것이 아닌듯 합니다.
    제가본 마지막 장면은 오히려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듯한 느낌이였는데요
    감상평 잘 보았습니다.
    영화가 흥미 있더라구요 ^^

    2008/07/25 14:16
    • BlogIcon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저도 수애 캐릭터가 나약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처음 영화평이 나왔을 때는 순이의 강인한 여성캐릭터와 그녀의 모성같은 위대한 사랑이라는 측면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다만 저는 위글에서 썼듯이, 순이가 강하게 변모하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자신의 섹시함과 섹슈얼리티 때문이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무대위에서 노래하는 건 그렇다쳐도 사랑하지도 않는 남편을 찾기 위해 미군에게 몸을 바칠 필요가 있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8/07/25 16:31
  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영화를 봤는데..제가 여자여서 그런지.. 전 사로잡혔어요.ㅋㅋㅋ스크린속의 써니에게.

    전솔직히 아직도 왜 순이가 그렇게 남편을 찾았는지 알쏭달쏭한 기분이에요..뭘말하고싶었던걸까요.감독은.

    2008/07/25 16:26
  4. ㅋㅋ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70년대를 배경으로 당찬 여주인공을 기대한다면 사실성에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주인공을 이해해야지 현재의 시각으로 캐릭터를 판단하는 것은 글 쓴분의 이해력 부족으로 생각됩니다...

    2008/07/25 16:35
    • BlogIcon kimjihee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제가 요즘 흔한 당차고 똑부러진 여성을 기대한게 아닙니다. 위에서 말했듯, 영화에서 수애의 변화를 표현하는 과정이 불만족스럽다는 겁니다.
      순이가 순종적이고 고전적인 여성에서 점차 강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직접적 계기가 남자들에게 통하는 여성스러움, 섹슈얼리티라는 게 '조금' 불만이라는 겁니다.

      그외에 마지막 장면은 저도 무척 감동스럽게 봤습니다.

      2008/07/25 16:45
  5. 페미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은 전형적인 페미니스트 생각을 하시는군요. 여성이 남자들을 압도하고, 남자와 똑같은 용맹을 갖춰야 진정 강한 여성이라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을 갖고 계시네요. 그럼 수애가 월남전가서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아마조네스 여전사가 돼서 싸워야 여성의 강함을 인정했다고 하시려나?? 여장부만이 신세대 여성이란 고정관념이 너무 지나치신건 아닌건지 모르겠네요...

    2008/07/25 18:19
  6. 황본좌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꼴통 페미니스트의 글이네요....영화를 영화로봐야지 무슨 감독이 여성운동합니까?

    2008/07/25 18:42
  7. vegan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의 글에 일부 공감합니다. 저도 영화를 보며 내내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치부하는 작태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기분이 몹시 언짢았지요. 밑에 어떤 분은 페미니스트가 뭔지 모르고 여전사가 어쩌고 떠들어대고 또 어떤분은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는 단어까지 남겨놓으셨는데 이게 한국의 현실입니다. 제대로 된 의식을 가진 사람들도 적고 감독도 없죠. 영화보면서 거슬리지 않을 정도의 의식조차 가지지 못한 감독들말이죠.
    존 레논의 woman is the niger of the world 추천합니다.

    2008/07/25 19:51
  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자와는 다른 남자의 무기가 물리적 힘이듯이 남자와는 다른 여자의 힘역시 섹슈얼리티라고 생각하는데요 섹슈얼리티라는 무기가 없었다면 역대 이름을 남긴 여성이 몇이나 남을까요? 섹슈얼리티 역시 여자가 남자를 굴복시키는 가장 근본적이고 최강의 무기라고 생각 되는데요 영화 보는내내 수애가 남자에게 꿀리고 산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습니다.
    델마와 루이스의 델마같은 강인함을 가진 사람을 원하신건지 모르겠지만요
    현대물이라면 글쓴님이 원하는 캐릭터도 충분히 반영할만하다고 생각되지만 37년전의 여성
    캐릭터라면 상식적으론 생각하기 힘드네요.

    2008/07/25 19:57
  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가지 미군장교에게 남편수색 부탁할때는 너무 전형적이라 그건 좀 열받더군요

    2008/07/25 2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