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는 최근 관광지로 유명해지기 전 1970년대 크메르루즈와 킬링필드라는 뼈아픈 피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지뢰박물관에서 본 그림... 지뢰를 밟고 처참하게 죽은 아이들 시신 옆에서 울고 경악하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그림이 비록 그림일 뿐이지만 가슴 아팠다... 저런 일이 실제 다반사로 일어났을테니...
이 초라한 지뢰박물관에는 당시 지뢰와 무기 등이 전시돼 있었다.
지뢰박물관 앞을 지키는 어느 소년. 그는 열두살이라고 했는데 학살 당시 크메르루즈 복장을 하고 있다. 내가 한손으로 안은 어깨는 무척 작고 갸냘팠다. 당시 이렇게 어린 아이들도 군에 가담했다고 한다.
관광지에서 돈을 구걸하고 고작 "원달러"에 스카프, 팔찌 등 액세서리 등을 파는 아이들만 보다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을 보니 너무 반가웠다.
어느 절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젊은 여선생님과 아이. 마치 영화 속 한장면처럼 예뻤다.
캄보디아에서 내가 유일하게 즐긴 밤문화. 낮엔 유구한 유적으로 신비롭게 사람들을 매혹했다면, 밤이 되자 이곳 씨엠립은 이국적인 네온사인으로 나를 홀렸다. 완전히 현대적이지도 않고, 완전히 오지도 아닌 모습은, 동양과 서양이 섞인 특유의 아시아 관광지 느낌이 났고 파타야 밤거리와 비슷했다.
여러 술집과 까페들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레드피아노'다. 영화 <툼레이더> 촬영 당시 안젤리나 졸리를 비롯 촬영팀들이 즐겨 찾았다고 해서 유명해진 곳이다. 안에 들어가보니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나도 이국적 밤거리를 배경으로 맥주를 마시며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전날 밤 몇시간 동안 내 발이 되주었던, 너무나 친절했던 뚝뚝이 기사 아저씨를 호텔앞에서 다시 만났다. 오토바이 뒤에 2인승을 연결한 일명 '뚝뚝이'는 이곳에서는 주요 교통수단이다. 달리면 덜컹거리고 흙먼지가 날리긴 하지만, 먼 여행지에선 뭐가 대수랴. 그리고 인심 좋은 현지인을 만나 얘기도 나눌 수 있는데...
나를 태워줬던 기사 아저씨들과 그의 친구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유일하게 영어를 할 줄 아는 제일 오른쪽 아저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이들은 "한국과 캄보디아는 모두 아시아인, 우린 친구들"이라며 내가 떠날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언덕 위에 있는 앙코르와트의 프놈바켄 사원은 일출 또는 일몰을 보기 위해 관광객이 찾는 곳이다.
우리팀도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해가 지기 전 프놈바켄 사원으로 열심히 올라갔다.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길을 닦아놓거나 하지 않아서 꽤 험한 길을 힘들게 걸어올라가야 했다. 특히, 해가 진 뒤 내려올 땐 가로등 하나 없이 까맣게 어두워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최근에 앙코르와트에 다녀온 가족에 의하면, 이젠 꽤 평탄한 길로 바뀌었다고 한다.
산중턱 오르는 길에 악기 연주는 왠지 운치있게 들렸다.
험한 산을 다 오르면 드디어 고지가 보인다. 신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험난한 법. 사원으로 오르는 계단 역시 좁고 가파르기 때문에 발을 조심조심 디뎌 올라가야 한다.
산 꼭대기 프놈바켄 사원에서 일몰을 기다리는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
이 곳의 스님들도...
프놈바켄 위에서 바라보는 앙코르와트.
드디어 캄보디아, 씨엠립의 앙코르와트, 프놈바켄 사원에서 해가 지기 시작했다. 여행자들의 가슴은 두근두근.
하늘 반대쪽엔 어렴풋이 달이 떠 있는 가운데 모두들 일몰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프놈바켄에서 바라보는 우주에서 단 한 순간의 일몰. 이국이어서 그런지 더욱 신비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웠다. 고요함 속에서 한마음으로 해가 지는 광경을 지켜본 세계의 관광객들은 장엄한 일몰이 끝난 뒤 박수를 쳤다. 서로 모르는 이방인들끼리 같은 순간을 함께 나눈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 중 가장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는 반데이스레이 사원. 비록 규모는 작지만 이 붉은빛 작은 사원은 부드러운 곡선의 조각이 너무 아름다워서 반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어느 여신의 성전같은 느낌이었다. 또 다른 앙코르와트 유적지처럼 이곳 역시 여기저기 보수가 진행중이었다.
위에 있어야 할 아치 조각이 맞춰져 있는 모습. 세월이 흘러 많이 무뎌졌겠지만 그 섬세한 아름다움은 여전히 자태를 뽐내고 있다.
너무 섬세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인간의 조건>의 작가 앙드레 말로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훔치다가 딱 걸렸다는 여신 부조.
앙코르와트 유적지에는 가장 유명한 '앙코르와트'뿐만 아니라 많은 사원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1200년대 자야바르만 7세가 지었다는 코르톰도 그 중 하나다. 앙코르톰의 남문. 양옆으로는 54명의 선신과 54명의 악신이 거대한 뱀으로 우유를 젖고 있는 신화 속 모습이 재현돼 있다.
이것이 바로 신들의 뱀 줄다리기 모습. 앙코르톰 입구뿐만 아니라 앙코르와트의 벽면 부조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신화 속 유명한 장면이다.
앙코르톰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넓은 유적지가 펼쳐진다. 그 중앙에는 바이욘 사원이 있다.
탑에는 큰 얼굴이 보인다.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자 부처의 얼굴이다. (자야바르만 7세는 불교를 받아들인 왕이다.) 약 50개의 탑의 4방에 이러한 얼굴이 조각돼 있다. 장엄하면서도 아름답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씨엠립의 톤레삽 호수는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배를 타고 이곳을 구경하다 보면, 곳곳에 수상촌을 지어 살고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내가 캄보디아에 있었던 11월은 우기의 마지막이자 건기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물은 꽤 차 오른 시기였다.
캄보디아는 빈국 중에서도 빈국이다. 톤레삽 호수 입구의 수상촌.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이런 초라한 집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모터 달린 배를 20~30분쯤 타고 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같은 톤레삽 호수와 접하게 된다. 사방을 둘러봐도 물밖에 없어서 정말 바다 같았다.
11월 우기가 끝나갈 때 즈음... 호수의 물은 땅을 집어삼켰다. 나무들도 물에 잠겼거나 겨우 윗부분만 드러낼 뿐이다.
해수면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알 수 있다. 물 위에 나무가 둥둥 떠 있는 듯하다.
물 위에 떠 있는 수상촌~! 빨래도 걸어져 있고, 실제 사람이 사는 집이다.
관광객들이 탄 배가 멈추자 구걸하는 아이들이 왔다. 캄보디아에서는 관광지 어느 곳에서나 구걸하거나 물건을 파는 아이들을 볼 수 있다. 돈맛을 알면 학교에 가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돈을 주지 말라고 가이드가 말했다. 내 일행 중 한 부부는 한국에서 아이들 헌옷가지를 챙겨와서 아이이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인데 잘 컸으면 좋겠다.
해는 점점 기울고... 너무 멋진 풍경이었다...
톤레삽 호수 안에는 작은 휴게소 같은 게 있다. 이 곳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음료, 음식 등을 판다. 간판에 "어서오세요" 어쩌고 적어놨는데 '어서오세요' 다음에 이어지는 문자들은 정말 해독 불가다.-_-;
휴게소 위쪽에서 본 톤레삽 호수. 물에 잠긴 나무, 집들, 학교 등이 보인다.
휴게소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에게까지 다가와 구걸하고 있는 아이들. 작은 세수대야같은 것을 타고 작은 노 하나만 들고 물 위를 돌아다녔는데 너무 위험해 보였다. 가끔 대야가 흔들리며 뒤집어지기도 했지만 이들은 물에 빠져도 익숙한 솜씨로 다시 올라탔다. 내 눈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2005년 11월 엄마와 둘이서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동남아인데다, 세계 불가사의의 문화유적지이다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도 매년 많이 찾고 있고 요즘 앙코르와트 관광에 관한 기사도 쏟아지고 있다. 문득, 내 컴퓨터 하드에서 썩고 있는 많은 사진들이 아까워졌다.
예전 이 블로그에서 앙코르와트에 대한 간략한 여행기를 남긴 적이 있는데, 이번엔 각 장소별 사진을 올려본다.
이게 바로 앙코르와트 전경~!! 연꽃이 핀 아름다운 인공호수를 둘레로 사방 1km에 걸쳐 축조된 아름다운 석조 건물.
정식 국명 'KINGDOM OF CAMBODIA'인 캄보디아의 국기.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바로 앙코르와트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 캄보디아를 대표할뿐만 아니라, 크메르민족(캄보디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앙코르와트는 1993년 제정된 국기에도 나오고 있다.
큰 대문(?)을 통과한 뒤 가까이서 본 앙코르와트.
앙코르와트를 비롯 여러 건축물을 장식하고 있는 무희 '압살라' 부조. 역시 인도 조각처럼 가슴은 풍만하고 굴곡이 진 아름다운 모습이다.
앙코르와트의 긴 회랑. 벽면에는 인도 신화의 다양한 이야기가 조각돼 있다.
우리나라도 '궁'에서 웨딩촬영하는 것처럼 캄보디아인들은 여기서 결혼 사진을 찍나보다. 신랑도 흰색 옷을 입는 게 특이해 보였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나 마주치게 되는 갓 결혼한 신랑신부들은 볼때마다 흐뭇하다..^^
앙코르와트의 큰 문을 들어서서 안에 들어가면 올라가야 할 고지가 있다. 이것이 바로 그 악명높은 가파른 계단. 계단의 폭이 좁고 경사가 커 계단을 걸어 올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기어 올라가야 한다.
바로 이렇게 두 발, 두 손을 모두 계단에 짚고 동물처럼 올라가야 한다...
그리고 내려올 때 역시 만만치 않다. 심지어 옆에 내려가는 것을 돕기 위한 밧줄도 있을 정도다. 이런 위험 때문인지 이 곳에 오르기를 포기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하지만 위에 올라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앙코르와트 신전 건축의 검은 빛은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며 폐허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신비한 매력을 발산한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볼 때 유적지를 마음대로 밟고 오르내리고 하는 게 조금 이상하고 불경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아직 앙코르와트는 그 수많은 관광객들에게 거의 모든 것을 다 열어놓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이 앙코르와트를 탐험가 마냥 여기저기 오느내리고 들락날락하고 돌아다녔다. 무척 무더운 날씨지만, 이 위에서만큼은 바람이 불어 시원했다.
2005년 11월 중순 3박 4일간의 앙코르와트 여행.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세계 여행지 중 하나라고 하는 이 곳을 이번 가을 휴가 때 가게 됐다. 정확하게 말하면, 앙코르와트는 앙코르톰이나 반데이스레이 등을 포함한 앙코르 유적지 중 하나다. 캄보디아의 씨엠립 시에 있는 이 유적지는 고대의 신비와 세월의 흔적을 담은 쓸쓸한 폐허의 모습을 동시에 간직하고 있었다.
▲앙코르와트. 연꽃이 핀 아름다운 인공호수를 둘레로 사방 1km에 걸쳐 축조된 아름다운 석조 건물.
▲정식 국명 'KINGDOM OF CAMBODIA'인 캄보디아의 국기. 캄보디아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은 바로 앙코르와트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 캄보디아를 대표할뿐만 아니라, 크메르민족(캄보디아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앙코르와트는 1993년 제정된 국기에도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씨엠립으로 가는 경로는 여러가지가 있다.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는 태국이나 베트남과 함께 연계돼 있는 상품이 많다. 태국과 함께 연계된 상품은 5시간 정도 육로로 가는 일정인데다 앙코르톰이나 앙코르와트를 단 하루에 보고, 앙코르 예술의 백미인 반데이스레이는 빠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가격은 정말 싸다.
앙코르와트만 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데, 우리나라의 아시아나 직항 노선을 이용하거나 대만의 원동항공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글을 썼던 당시와 달리 최근엔 대한항공 직항까지 생기고 앙코르와트 인기가 더해져 가는 방법이 훨씬 다양해졌다. 경유 방법도 대만 외에 마카오도 생겼다.) 원동항공은 중간에 대만의 까오슝에서 쉬었다가 가는데 아시아나 직항보다 훨씬 싸다. 까오슝에서 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2시간 정도인데, 쉬는 동안 까오슝 공항의 면세점도 이용할 수 있고 내렸던 자리에서 다시 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다.
이번 여행에서 바로 이 원동항공을 이용했는데, 오래 앉아 있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오히려 중간에 쉬면서 작은 공항이지만 면세점도 둘러보고 걸어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빨간 비행기가 대만의 '원동(遠東, Far Eastern)항공'이다. 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한자로 '遠東', 영어로는 Far East인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에서는 '극동(極東)'으로 번역되는 바로 그 단어가 대만에서는 '원동'이었던 것이다. 이 비행기는 무척 작다. 중앙좌석이 없고,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세 좌석씩 있다. 즉, 한 줄에 여섯 좌석이 있다. 작다고 해서 걱정했지만, 그 점만 빼면 그냥 보통 비행기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혹시 이 비행기 타고 여행하실 분 참고 :: 기내에서 파는 면세품 중 다른 건 모르겠지만 '클리니크 슈퍼시티 블록'은 정말 쌌다. 우리나라 백화점에서 3만3천원, 우리나라 면세점에서도 2만원대인 게 여기서 18달러였다. 당장 샀다. )
앙코르와트 유적지가 있는 씨엠립 시. 여기의 씨엠립 공항은 국제공항이라고 하기에는 그 규모가 너무 작았다. 그래서 지금 공항을 확장하는 공사가 크게 진행 중이다. 공항에서 보딩을 기다리면서 많은 서양인들이 방콕행 비행기를 타는 것을 봤다. 궁금해진 나, 공항직원에게 씨엠립에서 어느 도시로 갈 수 있는지 물었다. 그는 "아직은 공항이 작아서, 대만의 타이베이와 까오슝, 방콕, 베트남 등지 밖에 운항을 안 한다"고 했다. 하지만 성수기 때는 일본 오사카나 서울 등지도 운행한다고. 큰 신공항이 건설되면 더 멀리, 더 많은 비행기가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직접 보고 겪은 씨엠립, 캄보디아는 정말 못 사는 나라였다. 어디든 갈 때마다 관광객들에게 돈을 구걸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맨발인 아이들도 흔했다. 함께 간 현지의 한국인 가이드는 "아무리 불쌍해도 절대 돈을 주면 안된다"고 말했다. 캄보디아 정부의 협조사항인데, 돈 맛을 안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고 구걸만 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씨엠립의 재래시장에서 어린 동생을 안고 있던 한 소년. 계속 나를 따라다니며 돈을 구걸했지만, 돈 대신 면세점에서 샀던 초콜릿을 줬다. 이 꼬마는 초콜릿을 동생에게 먼저 먹였다. 아이들은 대부분 마른 아이들이었지만, 추위가 없는 열대 나라이기 때문에 먹는 것을 굶고 살지는 않는 것 같았다. 씨엠립에는 고층 건물이 없었다. 전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지라 호텔은 많았는데, 모두 건물이 낮았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역시 높이 제한이 있었다. 높으면 앙코르와트가 보이기 때문이라나? 그래서 모든 호텔이 높아봤자 5~6층이었다. 아무튼, 호텔에서는 편하게 깨끗하게 머무를 수 있었지만, 바깥은 아직까지 비포장 도로가 많아 흙먼지 날리는 그런 곳이었다.
▲앙코르톰의 바이욘사원. 자야바르만 7세의 얼굴이자 부처의 얼굴이다. 약 50개의 탑의 4방에 이러한 얼굴이 조각돼 있다. 장엄하면서도 아름답다. 모나리자의 신비로운 미소 못지 않은 아름답고 자비로운 미소가 빛나며 '앙코르의 미소'로 불리운다.
▲영화 '툼 레이더'에도 나왔던 타 프롬 사원. 생명력 강한 수많은 나무가 오래된 사원을 감싸고 뚫고 자라 신비로움을 더한다.
▲앙코르 유적지 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 중 하나인 반데이스레이. 규모는 작지만 매우 섬세하고 우아하고 아름답다. 크메르 예술의 극치라고 한다.
▲프놈바켄 사원에서 일몰을 보기 위해 모인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 일몰이 끝나자 일부 관광객들은 박수를 쳤다. 세계 여행인들이 한 뜻으로 모여 함께 같은 것을 공유한 것은 재미있고 특별한 경험이었다.
▲현재 승려들이 있는 어느 사원에서 본 풍경. 종교 외에 교육의 기능도 하고 있는 한 사원에서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는 모습.
▲교복 입은 캄보디아의 학생들. 구걸하는 아이들, 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아이들을 보다가 이런 교복 입은 아이들을 보니까 참 반가웠다. 다른 많은 아이들도 이들에 합류하기를 바란다.
▲톤레삽 호수의 수상촌.
▲톤레삽 호수의 윗부분만 보이는 나무들. 11월은 우기의 마지막이자 건기의 시작이었다. 완전한 건기가 되면, 물이 빠지고 이 나무들은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지뢰박물관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한 소년과 함께. 12세인 이 소년의 복장은 당시 학살을 자행했던 크메르루즈군의 복장이다. 초라한 듯 보이는 이 지뢰박물관에는 수많은 지뢰와 함께 피해자들의 경험담, 당시 무시무시했던 학살 등이 전시돼 전쟁의 비극을 전해주고 있다.
▲지뢰박물관에서 본 한 그림. 지뢰를 밟은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과 함께 이를 보고 눈물 흘리는 가족과 놀란 마을 사람들의 모습. 이런 상황이 불과 몇 년 전에까지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슬프로 참담한 심정이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툼레이더'를 찍을 당시 자주 들렀다던 '레드피아노'. 이 카페가 있는 거리는 내가 본 캄보디아에서 가장 화려한 곳이었다. 밤이 되자 이 카페와 길목은 이국적으로 변했다. 태국 파타야의 그 밤거리와 비슷했다. 카페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대부분 서양인들이었다. 레드피아노의 2층 테라스에 화려한 뒷거리를 배경으로 앉아 맥주를 마시며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오토바이 택시', 일명 '툭툭이' 기사들. 전날 밤 나의 전용기사였던 기사 아저씨와 그의 동료들을 아침에 호텔 앞에서 다시 만났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이들과 한 30분 정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이들은 "한국과 캄보디아, 우리는 모두 아시아인들이다"며 나에게 "한국에 가서 친구들에게 이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내가 만나본 캄보디아인들은 모두 친절하고 참 착했다. 도시는 밤에 위험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치안 등도 안정이 된 상태였다. 도시의 길거리는 신호등도 없고 흙먼지 날리는 그런 곳이었지만, 정말로 나는 이 도시가 그립다. 내 행운을 빌어주며 버스에 타서 공항으로 떠나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줬던 이들을 언젠가 또 만나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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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킬링필드!
2007/04/11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