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is Syndrome.
파리 신드롬일까? 패리스 신드롬일까?
영어 철자는 똑같지만 우리나라 말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뜻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시대 최고의 가십 셀레브리티인 힐튼 상속녀 '패리스 힐튼' 관련 신드롬일 가능성이 커보이지만 여기서 'Paris Syndrome'은 프랑스의 수도이자 예술과 낭만의 도시인 파리(원어인 불어에 가깝게 발음하면 '빠히' 되겠다)를 가리킨다.
지난 10월 23일 로이터통신은 파리 여행 후 충격에서 헤어나올 줄 모르는 일본인들을 소개했다. '낭만의 도시' 파리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일본인들 일부는 실제 파리를 방문한 뒤 불친절한 사람들, 지저분한 거리 등을 마주하고는 심리적 충격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들 중 3분의 1은 금세 나아지지만 또 다른 3분의 1은 상태가 더 악화되기도 하고, 나머지는 정신병을 얻기도 한다.
이처럼 파리에 대해 환상을 품었던 사람이 현실의 파리를 마주하고 겪는 정신적 위기를 '파리 신드롬'이라고 한다. 이 말은 2004년 심리학 저널에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나는 9년 전 파리에 갔었다. 이틀 정도 머물렀기 때문에 제대로 파리를 경험했다고 볼 수 없지만 같이 방문한 영국이나 독일보다는 파리가 훨씬 좋았다. 조금은 지저분하지만 좀더 자유롭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넘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도 '파리'라는 브랜드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바이러스가 런던이나 프랑크푸르트보다 100배쯤 더 많았다. 어쨌든, 파리는 내 감수성에 딱 맞는, 딱 내 스타일의 도시였다. 다른 여느 서유럽의 도시보다 지저분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런 모습까지도 나는 '인간적'이고 친근하다고 느꼈다.
역시 사람마다 끌리는 스타일이 모두 제각각인가 보다. 완벽하게 깔끔하기보다 자유분방해서 끌렸던 도시의 지저분한 점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파리 신드롬'이란 것을 겪는 일본인들은 정말 순진하거나 서양에 대한 동경이 너무 컸던 것 같다.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이국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호기심을 넘어 서구에 대해 지나치게 동경하고, 더 나아가 숭배했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파리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것은 일본인이나 우리 같은 동양 사람들뿐만은 아닌 듯하다. 요즘은 <프렌즈>나 <섹스 앤 더 시티>같은 미국의 막강한 드라마 파워 때문에 파리보다는 뉴욕이 젊은이들의 '꿈의 도시' 자리를 꿰찬 느낌이지만, 그 잘난 뉴요커들도 파리를 동경한다.
최신작인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미국 최고의 패션 잡지 '런웨이'에서 일하는 미란다의 제1 비서 에밀리가 얼마나 간절히 파리에 가고 싶어하는지 볼 수 있다. 뉴욕에도 패션 위크가 열리지만 에밀리는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위크에 간다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또 배경이 뉴욕이고 싱글들의 삶을 다룬다는 점 외에도 스토리상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는 <프렌즈>와 <섹스 앤 더 시티>에서도 '파리'는 뉴요커들에게 '꿈의 도시'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두 드라마의 마지막 두 에피소드를 보자. 여주인공인 레이첼과 캐리는 똑같이 파리로 떠나게 된다.
<프렌즈>에서 랄프로렌에서 일하던 레이첼은 파리에 있는 루이뷔통에서 일하게 된다. 뒤늦게 로스의 사랑 고백을 듣고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파리행 비행기를 탔지만... 결국 사랑을 선택한 그녀는 비행기에서 내려온다.
파리로 떠나기 전 그리고 도착한 직후 캐리가 '낭만의 도시' 파리에 있다는 자체로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떠올려보자. 알렉산더가 머무르는 호텔에 도착한 캐리는 룸 발코니에서 파리의 상징 에펠탑을 발견하고는 깡총깡총 뛰며 어린애처럼 좋아라한다.
<왼쪽 사진은 캐리가 머물렀던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의 호텔. 플라자 아테네(Plaza Athenee)>
하지만 파리가 아무리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또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해도 캐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낯선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캐리는 철저히 소외감을 느낀다. 결국 사랑을 좇아 파리로 떠났던 캐리는 연인도 사랑도 커리어에도 상처를 입고 뉴욕으로 돌아간다. 그 곳에서야 캐리는 진정 살아있는 것이고 자기자신을 찾을 수 있었다.
조금은 다른 얘기지만 19세기 소설가 헨리 제임스의 소설 <데이지 밀러>에도 순진한 미국 아가씨인 데이지 밀러가 유럽에서 갈등을 겪다가 상처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가 볼 때에는 미국이나 유럽이나 똑같이 '서구'이지만, 엄청난 문화 유산과 규범을 가진 유럽에서 말괄량이 젊은 아가씨인 데이지 밀러가 적응하기란 힘든 일이었다. 데이지 밀러는 '파리 신드롬'을 겪는 일본인들처럼 유럽과 미국간의 문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만한 유럽 사람들에 의해 철저히 소외된 끝에 슬픈 운명을 맞는다.
나와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 이국에 대해 낭만과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이 감성적인 물결 속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내 중심을 똑바로 잡고서 이국의 물결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또 막연한 환상은 금물이고.
하지만 어찌됐든 지금으로서는 난 파리에 가서 그 낭만성에 흠뻑 취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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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도 기억나요~'An American girl in Paris'! 그때의 캐리의 쓸쓸했던 모습,,
2006/11/04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