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는 어릴 땐 누구나 신데렐라나 백설공주가 되길 꿈꾸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백조가 되고 싶어했지만 어느덧 눈을 떠보면 까마귀가 돼 있지"
정확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영화 중반쯤 마츠코의 친구이자 포르노 배우인 메구미의 이 말이 너무나도 슬퍼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이때까지 보아온 마츠코의 인생이 탄식이 나올만큼 너무 안타깝기도 했거니와, 이 나이가 되도록 일과 연애 모두 만족스럽지 못한 내 처지가 갑자기 더욱 처량하게 느껴져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또는 그날 상사의 말도 안되는 심술에 화가 나 있던 차에 그 대사가 꽉 차오르던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을 톡 건드려서 그랬는지도...
어쨌든, 이 세상 어느 여자가 어린 시절 자신이 매춘이나 포르노를 찍거거나, 남자한테 맞고 살인을 하기를 상상이나 했을까. 하지만 인생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그렇게 흘러가 버린다. 꿈많던 소녀였으며 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마츠코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도둑 누명을 쓰게 되고, 남자의 폭력에 길들여지고, 남자의 첩이 되고, 몸을 팔게 되고, 남자를 죽이게 된다. 왜 한 여자의 일생은 이렇게 되는 것일까. 마츠코도, 마담 보바리도, 안나 카레니나도, 왜 여자 이름을 내건 작품 속 여주인공들의 일생은 이다지도 비극적일까.

어느날 강둑에서 중년의 여인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 여자가 홀로 살던 집은 작고 초라하며 쓰레기장처럼 더럽다. 그 여자의 옛날 사진 속 젊은 그녀는 눈을 한 가운데로 모으고, 돼지처럼 입을 내밀어 엽기적인 표정을 짓고 있다. 이런 코믹하고 엽기적인 표정의 여자가 어쩌다가 이렇게 지저분한 집에서 살며 살해당했을까 궁금해진다. 왠지 이 표정처럼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삶을 살았을 것만 같다. 하지만 점점 전개되는 마츠코의 삶은 이런 기대를 크게 벗어나 버린다. 그녀는 전통적인 호스티스 영화의 주인공처럼, 나쁜 남자들에 의해 사랑도 순수도 짓밟히고 몸과 마음은 망신창이가 돼버린다.
마츠코의 잘못은 그녀가 너무 순수했다는 점과 너무 사랑에 의지했다는 점이다. 그녀가 좀더 여우같고, 좀더 이기적이고, 좀더 못됐다면, 또는 지나치게 사랑을 믿고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다면, 따라서 좀더 자기 자신을 사랑했다면 더 행복한 삶을 살았을 것이다. 마츠코가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할 때쯤(남자가 떠나거나 남자에게 버림받았을 때), 또다른 남자가 나타나 마츠코를 '구원'해준다. 하지만 사실 그 '구원'은 그녀를 더욱 더 지옥으로 떨어트린다.

영화의 미덕은 이러한 진부한 구식 이야기를 전혀 진부하지 않은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데 있다. 마츠코의 인생이 너무나 비참하고 너무나 가여워서 안타까운 함숨을 내뱉을 때쯤, 영화는 갑작스런 코믹 설정으로 어이없이 웃게 만든다. 경쾌한 음악과 원색의 뮤지컬, 마츠코의 천진난맘함이 어우러져 왠지 마츠코가 저 진흙탕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 것만 같다.
독특하지 않은 이야기를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냈기 때문인지 마츠코의 인생은 시시하고 진부하고 비참했지만,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마츠코의 일생은 '신화'로 남는다. 자신을 본 적도 없는 조카와, 아낌없이 사랑했지만 자신을 두번이나 구렁텅이로 빠트린 한 남자에게 마츠코는 종국엔 '신'이 된다. 또 그녀가 불렀던 맑은 울림의 노래는 과거 그녀와 함께 있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영원히 가슴에 남는다. 하지만 이들이 뒤늦게 마츠코의 순수와 사랑과 용서를 알게 된들 어쩔 것인가. 이미 마츠코는 철저히 유린당했으며 이 세상에서 사라져벼렸으며, 때는 너무 늦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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